강렬한 명암 대비... 지척 같은 여체의 숨소리
●이재길의 누드여행(14)
누드, 여인의 품을 느끼다
엷은 베일 너머로 보이는 듯한 부드러운 초점의 빛 속에서 포즈를 잡은 여성의 모습은 작가의 로맨틱한 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원단의 포근함과 깨끗한 이미지는 여체의 온도와 품을 느끼고 싶은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여인의 누드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묻어나는 성적 욕망과 낭만이 함께 느껴진다. 바로 이 작품의 사진가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 ‘로베르 드마시’(Rebert Demachy)이다. 회화주의적인 요소들로 남다른 표현을 중요시 하였던 그는 사진의 고유한 특성을 이용하여 그림같은 사진작품들을 쏟아내었다. 이러한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던 기법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가 최초로 발견한 인화방식인 ‘고무 인화법(일명 검 프린트)’이다.[사진 1]
고무 인화법이란 화학물질인 중크로산염과 고무물질을 혼합해 만든 유제를 사용한 인화방식을 말한다. 거친 입자와 강렬한 명암대비가 이 인화방식의 큰 특징이다. 벗은 여체의 숨소리가 묻어나는 듯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인화방식은 ‘누드’로부터 시작된 무한한 예술세계의 특수함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벗은 몸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불편해 보인다. 잔뜩 긴장한 채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지 않고, 부끄러운 듯 앉아있는 여성의 모습에서 묘한 성적 매력이 돋보인다. 마치 첫 날밤을 앞두고 수줍어하는 신부의 모습처럼 여성의 순백한 섹슈얼리티가 아름답게 비춰진다. 여체의 고운 선과 피부에 반사되는 화려한 빛의 향연이 신비롭게 어우러져 섹시함 그 자체로 반영된 것이다.
로베르 드마시는 작업과정에서 누드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작업태도를 창작의 본질로 여겨왔다. 카메라 렌즈에 투영되는 여인의 벗은 몸은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 속 주인공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그 대상이 누드여야만 했던 이유는 내면의 고백을 토로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누드사진이 회화주의 사진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의 작업태도와 철학과 연관이 있다. 실제로 로베르 드마시는 “자연을 노예와 같이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리 그가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그 작품 자체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원판에 수정을 하거나 변형을 통해 표현대상을 이상화하는 것이 그만의 일관된 창작태도였다.
드마시의 누드사진에서 여인의 누드에 대한 ‘환상’이 엿보인다. 파스텔처럼 붓칠을 해 놓은 듯한 감광유제의 불규칙한 궤적, 그리고 거친 입자성은 그의 눈에 비치는 여인의 실체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알 수 없는 여인의 심정을 여체의 누드와 특유의 인화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2]
그가 이러한 표현방법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라는 사진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실제의 삶 속에서 그대로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회화적인 표현들을 보았을 때 ‘화가 출신일 것이다’라고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로베르 드마시는 아마추어 사진가로 예술인생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19세기 중후반 매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멈출 수 없었던 인간의 성적욕망은 수많은 누드사진들을 통해 표출 되어왔다. 당시 사회적 이면에는 포르노 사진과 같은 적나라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성적 자극을 도모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베르 드마시의 누드사진과 같은 회화주의 사진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여체의 벗은 몸은 단순한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만이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예술의 인격적인 창조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즉, 그의 작품세계로부터 ‘누드’가 열렬한 환상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 사진 출처
[사진 1] http://theredlist.com/wiki-2-16-601-797-view-pictorialism-profile-demachy-robert.html
[사진 2] http://theredlist.com/wiki-2-16-601-797-view-pictorialism-profile-demachy-robert.html
※ 이재길의 누드여행 이전 시리즈 보기
(12) 신비, 전율... 움직이는 누드 속 ‘또 다른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