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진정한 쾌감’을 맛보게 하라
●정신과 의사의 좋은 아빠 도전하기(8)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도 종목의 장미란 선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역도경기는 인상과 용상을 합해 6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미란 선수는 4번의 시도 만에 금메달을 확정해서 경쟁자들의 멘탈을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2회의 시도에서는 여유 있게 세계 신기록에 도전했습니다. 2위와 상대가 안 되는 여유 있는 승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필자는 당시 처갓집에 모여서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다들 환호하고 있을 때 제가 문득 한마디 했습니다.
나: "역도 저게 뭐가 재미있다고 저렇게 열심히 들지?"
장인어른: "금메달 따면 연금 나오잖아."
어렸을 때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양정모는 이제 평생 연금이 나오니 걱정이 없겠다고. 그 때 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연금이 얼마인지 확인해 보았더니 100만원입니다. 1976년 당시에는 엄청난 돈이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최소 생계비 정도 수준인 듯 합니다.
고작 이 정도 금액을 위해서 태릉 선수촌에서 수년간 젊음을 바치며 그 재미없는 역기 들기 훈련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테니스, 스키, 골프 같은 운동은 재미라도 있지, 역기 들기는 과연 무슨 재미가 있을까? 비슷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운동으로 보디빌딩, 마라톤, 산악등정 등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고생을 사서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과거에 황영조 선수가 은퇴를 한 이후, 이봉주 선수의 경기에서 해설위원으로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옆에 아나운서가 황영조 선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렇게 뛰고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뛰나요?"
"자동차가 와서 나를 치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경기 도중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차마 포기할 수는 없나 봅니다. 그러니 자동차가 치어주어서라도 그만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그런데 테이프를 끊는 순간 뇌의 앞쪽 부분인 전두엽에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성공 경험을 했을 때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이 도파민이 쏟아지면 지금까지의 고통을 한 순간에 잊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공에 중독이 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 힘든 고생을 왜 사서 하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고 합니다. 등정을 하다가 바로 옆에 동료가 죽는 사고를 경험하고 수년간 산에 가는 것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결국은 다시 산에 오릅니다. 심지어는 죽은 동료를 추모한다며 오르기도 합니다. 이들 역시 생사를 가로지르는 고통 끝에 정상에 섰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이 된 것입니다.
필자의 부부는 유학시절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나름 좋은 아빠 되어 보겠다고 육아에 열심히 참여를 했었습니다. 신생아를 돌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시간 단위로 깨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 때문에 토막 잠을 자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름 열심히 아내를 도와준다고 하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점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여기서 여자들의 모성의 힘은 남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깨어나서 아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아내가 저를 깨웠습니다. 아기가 웃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깨웠다고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생후 3,4주 정도에는 아직 감정이 발달되지 못해서 웃는 것이 웃는 것이 아니라 얼굴 근육을 잘못 움직여서 웃는 것 비슷한 표정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웃는 것이든, 어쩌다 웃는 얼굴이 만들어진 것이든 중요한 것은 아니고, 아기 엄마는 아이가 웃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고 중독이 됩니다. 그리고는 육아 노동의 힘든 점을 잊어버리고 또 열심히 아기를 돌보게 됩니다.
보디빌딩을 하느라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닭가슴살 셀러드만 먹고 삽니다. 차갑고 푸석 푸석한 닭가슴살을 먹고, 배고픔을 겪으면서도, 하루 하루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만들어지면서 복근의 섬세한 선이 드러날 때 배고픔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살 빠지는 즐거움, 근육의 섬세한 선이 드러나는 쾌감은 배고픔의 고통을 충분히 잊을 만큼 달콤한 쾌감입니다.
고3 학생이 공부를 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공부라는 것이 "재미없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지겹고 힘들다고 하지만, 그들이 공부에 빠져들 때는 몰입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몰입을 잘 하는 아이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공부에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만일 공부 잘 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아빠 생신이니 2시간만 쉬고, 나가서 외식을 하자" 고 했는데, 막상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 막혀 3시간을 소모해 버리면, 아이는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의 맛을 아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들입니다.
인생에서 쾌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흥적인 쾌감’과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오는 성취감의 쾌감’이 그것입니다.
컴퓨터 게임, 도박, 섹스 등의 쾌감은 즉흥적인 쾌감에 해당됩니다. 아무리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게임을 할 때는 집중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박장에서 72시간 잠을 안자고 도박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저 역시도 영화를 보다 야한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집중 모드로 빠져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노력 끝에 얻는 성취감으로부터의 쾌감은 독서를 할 때, 공부를 할 때, 돈을 모았을 때, 승진을 했을 때, 다이어트를 성공했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과정에서는 고통이 따르지만, 결과를 경험하면 그 쾌감은 즉흥적인 쾌감의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잊어버리고 다시 몰입하게 됩니다.
청소년을 상담하다 보면 가끔씩 성을 경험한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아이들도 학습권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인 듯 합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로써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성을 경험한 아이들은 상담 치료의 예후가 그리 좋지 않은 듯 합니다. 성의 경험은 워낙 강렬한 쾌감이라서 중단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서 한번 성을 경험한 아이들은 다시 그 경험을 찾게 되는 듯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 문화가 청소년이 성을 경험하려면 음지에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경험을 다시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음지로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제도권에서 자꾸 밀려나게 되는 듯 합니다.
즉흥적인 쾌락은 너무 강렬해서, 성취감의 쾌감을 경험하도록 노력할 마음을 없애버리는 듯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즉흥적인 쾌락을 주는 것들이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스마트폰입니다. 아이들이 칭얼대면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부모님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스마트 폰을 쥐어주면 칭얼대던 아이가 거짓말같이 조용해집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본인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성취감에서 오는 쾌감을 경험할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게임 보다는,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재미를 맛 보게 해야 할 것입니다. 축구를 하면서 팀워크의 쾌감을 느낀다던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밖에 없는 재미없어 보이는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그 스토리에서 오는 감동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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