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두 아이는 어떻게 반장이 됐나

우리 두 아이는 어떻게 반장이 됐나

 

정신과 의사의 좋은 아빠 도전하기

필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학습발달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정신과 의사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잘 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키워보니, 정신과 의사라 해서 아이들을 더 잘 키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자 앞에서나 정신과 의사이지, 집에 가면 똑 같은 남편이고 아빠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부모도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두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부분을 앞으로 건강의료포털 코메디닷컴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우리 두 아이가 반장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째는 초등 3학년 아들이고, 둘째는 초등 2학년 딸입니다. 항상 아이들을 보면, 두 아이의 성격이 좀 바뀌어서 태어났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들은 소극적인 성격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적극적이거나 도전적이지 못하고, 뒤로 주춤 주춤 빼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남자아이가 저래서 어쩌나 생각에 첫째에 대해 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격을 바꿔 보고자 어릴 적부터 운동을 많이 시켰습니다. 아이스하키를 3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도 퍽을 잡으면 상대팀 수비를 뚫고 드리블을 하기 보다는 다른 친구들에게 패스할 곳을 먼저 찾습니다. 드리블 하는 것도 과감한 공격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아들은 몰고 가면서도 빼앗길 것을 미리 걱정하는 듯 합니다. 반면 딸은 과감하고,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성격입니다.

아들은 공격적이지 않은 대신, 다른 친구들을 배려를 잘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2학년 1학기 초 반장 선거를 했는데 두 명의 최종 후보에 들었습니다. 결선 투표를 해야 하는데 아들은 기권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 기권했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반장을 더 잘 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속이 터졌습니다. 친구가 더 잘 할 것 같아서 양보를 했다는 것은 아들이 체면치레 상 한 말일 것 같았고, 아마 속마음은 결선투표 할 때 긴장감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일 듯 합니다.

어릴 적 저도 반장 선거를 나가곤 했는데 그 때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도전을 했다가 떨어지면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리스크를 감내하기 보다는 애초에 양보를 해 버리면 속 편한 것이지요.

한 학기가 지나 2학년 2학기 반장 선거는 제가 직접 준비를 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반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연설문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서 반장되는 법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무조건 목소리가 켜야 하고 두 번째는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그럴 듯 했습니다. 내용이 길어봤자 집중도 안될 것이고 애들 선거가 목소리와 웃기는 것이 승부를 좌우할 것 같았습니다. 연설은 웃기는 내용으로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아들은 거부했습니다. 타고난 성격상 체면치레가 강한 우리 아들은 남들을 웃기는 얘기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연설문을 짧고 간결하게 작성하고 외우도록 시켰습니다. 웃길 수 없다면 목소리라도 크게 하라고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반장이 되면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레고 블록을 사 주기로 ‘당근’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아들이 반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결과는 떨어졌습니다. 기 죽어 있는 아들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아빠는 네가 반장 선거에 나가서 끝까지 기권 안하고 도전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생각해 보면 반장이 되고 안 되고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이 뽑아주어야 반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마를 하고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기까지 최선을 다 했다면 부모로써 만족스러운 일인 듯 합니다. 그래서 레고 장난감을 사 주었습니다.

그 해 겨울방학에 사촌누나들을 만났습니다. 사촌누나들은 반장되는 비법이라며 우리 아들에게 두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1. 눈이 나오는 스프레이와 물이 나오는 스프레이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연설한다. “내가 반장이 된다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러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 때 눈이 오나 라는 말을 할 때 눈 스프레이를 뿌리고 비가 오나 라는 말을 할 때 물 스프레이를 뿌린다.

2. 신발을 벗어서 들고, 책상을 치면서, 말한다. 제가 반장이 되면 이 신발이 다 닳도록 여러분들을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역시 우리 어른들의 아이디어보다는 사촌누나들의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웃기는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3학년 1학기 초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눈 스프레이와 물 스프레이를 사러 이마트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연습시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쳐댔습니다. 성격상 아이들 앞에 도저히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못하겠다 말입니다. 기껏 연습을 해놓고 스프레이를 두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두고 간 스프레이를 둘째가 가지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 날 오빠는 반장에서 떨어졌고, 동생이 반장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연습을 시키지도 않은 동생은 눈 스프레이와 물 스프레이를 들고 눈이오나 비가오나 연설을 하고 반장이 되었습니다. 반장만 된 것이 아니라 스타가 된 듯 했습니다. 친구들 어머니들이 다들 웃긴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이쯤 되자 아이들 엄마는 필자에게 한 소리를 합니다. 애들 반장 되도 좋고 안 되도 좋으니 자꾸 압박해서 아이들 부담 주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제 욕심에 아이들을 너무 밀어부친 듯 해서 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이들에 부담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 번이나 도전했는데 안 되는 것을 보니 반장할 ‘감’ 아닌가 보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동안은 반장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동생이 반장이 되어 오니 샘이 난 듯 합니다. 나름 오기가 생겼나 봅니다. 3학년 2학기 때는 아무런 연습을 안 시켰는데, 첫째가 반장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3번 떨어지고 4번째 도전해서 된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경험은 첫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필자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좌절인내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픈 경험입니다. 그래서 그 실패가 싫어서 애초에 도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좌절인내능력이 약한 사람은 포기를 하게 되고, 좌절 인내능력이 강한 사람은 재도전을 하게 됩니다. 좌절인내능력이 강한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좌절인내능력이 키워지려면 실패를 했다가 재도전을 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들은 다행입니다. 3번 실패 끝에 4번째 도전을 해서 성공을 했으니깐요.

어쩌면 극성인 아빠를 만나서 도전을 계속 하게 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극성인 아빠입니다. 애들 엄마는 "우리 집은 치맛바람이 아니라 바지바람이 심한 집"이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이런 극성스러운 아빠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게 됩니다. 교육적으로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라고 하지만, 저 역시 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적절하게 부담을 주는 것은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듯 합니다. 적절하게 부담을 주어서 아이가 자신 없는 것이라도 일단 시도를 해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담이 과도해서 아이가 좌절하는 경험을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아들의 경우 끝까지 반장이 안되었다면 제 푸시는 과도한 것입니다. 다행히 마지막에 성공을 했으니 제 푸시는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기준이 있어야 할 듯 합니다.

답은 없습니다. 그냥 적절한 부담을 주되, 이것이 아이에게 심한 부담을 주지 않는지 민감하게 스스로를 관찰해야 할 듯 합니다. 애들 엄마가 저에 대해서 심한 것 같다고 피드백을 주는 것도 좋은 안전장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때로는 아이들에게 심하게 대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너무 풀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교육 방침은 옳은 것이다’는 신념으로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두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당장 좋은 부모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좋은 부모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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