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유물... 1000년 전에도 골동품 사기꾼

진화하는 유물... 1000년 전에도 골동품 사기꾼이재태의 종 이야기 (24)

아주 오래된 루리스탄 종과 골동품이고 싶은 청동종

 

종이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미신이나 종교 활동과 관련이 있다. 고대 중국과 잉카 문명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하여 종을 울렸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한 할아버지 종 수집가는 필자에게 성서의 출애굽기 28장 33-34 절 ‘대제사장의 가운 깃에 황금 종을 가졌고, 성전을 출입할 때 마다 종을 울림으로서 악령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였다’는 구절을 인용해 고대 종의 역할을 전해주었다. 종소리는 종교의식 중에서 죄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어져 왔다. 동아시아에서는 종의 여운이 영적으로 중요하므로 영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위하여 종을 울리기도 하였다. 서양의 큰 종들은 대부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가톨릭교에서 종소리는 천국과 하느님의 목소리를 상징한다고 보아왔다.

종의 주조에 관하여 처음으로 기술한 곳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전설적인 고대의 3황5제 시대에서 황제(黃帝)의 공인인 수(垂)와 염제(炎帝)의 손자인 고연(皷延)이 처음으로 종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중국의 종들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기원전 1000-15000년 전의 은(殷), 주(周)나라 시대의 종들이다. 서양과 중동지방에서는 3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시대와 로마시대의 종들이 남아있는데,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페르시아의 루리스탄 지방에서 발견된 유적에는 많은 수의 청동종들이 발견되어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종을 수집하면서 책을 통하여 루리스탄 청동 유물을 처음 알게 되었고 몇 년 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진품임을 보증했다는 두개의 청동종을 수집하였다. 한 개는 열린 격자 모양(open frame work)의 방울 종이고, 다른 것은 보통 모양의 자그마한 청동종으로 모두 동물에 사용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중국 주나라, 한나라 시대의 푸른 녹이 쓴 청동종을 뉴욕의 상인에게서 구입하였다. 필자가 약 2000-2500년 전의 종을 여러 점 가지고 있다고 하면, 매우 값이 비쌀 것이므로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자라고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종도 다른 골동품과 마찬가지로 연대가 오래되었다고 반드시 비싼 것은 아니다. 신라 토기가 청자나 조선 백자보다 저렴한 것과 유사하다.

중동의 시아파 이슬람 국가 이란은 오랫동안 페르시아제국으로 알려져 왔다. 페르시아라는 명칭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파르스(Fars)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라틴어화 하여 페르시아(Persia)로 변화되었다. 그 후로도 1935년 팔레비 왕조가 공식적인 국가 명을 이란으로 바꿀 때까지 오랫동안 페르시아라는 불려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수도 페르세폴리스가 불 타버린 후 2천년이 넘도록 그리스인들의 기록이나 전설과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20세기에 들어서 다양한 유적이 발굴 조사되고, 곳곳에 남은 쐐기문자의 비문들이 해석되면서 많은 사실들이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루리스탄(또는 로레스탄, Lorestan)은 아랍, 페르시아 및 그 밖의 종족으로 혼혈된 토착민인 ‘루르(Lurs)족의 땅’이라고 뜻이며 이라크 국경에 가까운 서부 이란 지방을 말한다. 많은 산맥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지역이며, 평야와 유목지 뿐만 아니라 근대에 개발된 유전도 있다.

루리스탄 지방은 고대시대 부터 오랫동안 독자적인 작은 왕조가 지배하던 곳으로, 20세기 초에 항아리와 말의 장식품 등 고도의 기술이 엿보이는 유물과 청동기가 다수 출토되어 유명해졌다. ‘루리스탄 청동기’라고 하는 이 청동기 유물들은 시기적으로는 초기 철기시대의 청동기에 해당되는데, 192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미국의 골동품 시장에 나돌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루리스탄 지방은 예로부터 유목기마민족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루리스탄 청동기와 채색무늬 토기는 이 지방 유목기마민족 분묘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토착민의 도굴로 출현된 것이 대부분이고, 출토품의 대부분은 돌로 된 수혈분묘(竪穴墳墓)에서 나온 것으로서 무덤에는 큰 돌로 된 뚜껑이 있고 둘레에 석책이 있었다고 전해질 뿐이었다.

그러므로 루리스탄 청동기는 도굴로 출품된 것이기 때문에 유물의 발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고 유물의 정확한 연대도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B.C. 1300년경에서 B.C. 400년 사이, 특히 대부분은 기원전 4-7세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그 종류는 칼, 도끼, 창 등의 무기, 재갈, 말고삐와 마차 부속품, 방울 등의 마차 및 마구, 팔찌, 혁대, 거울 등의 장신구, 신상(神象)과 제사용품 등의 제기용구, 각종 작은 생활용기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단검의 손잡이 장식, 말고삐 등에 부착된 말, 염소, 노루, 산돼지, 새, 스핑크스 등의 동물 모양이 특징적이다. 또한 그들이 신봉하던 신들과 반인반수상도 발견되었으므로, 그들 문화의 바탕이 되었던 종교를 엿볼 수도 있다.

루리스탄 청동기는 도굴이 되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거쳐서 유럽으로 반입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청동기로 알려졌다. 그리스어로 ‘강 사이’라는 뜻인 메소포타미아는 현재의 이라크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와 그 주변부를 말하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수메르문명, 아시리아문명, 바빌로니아문명, 히타이트문명, 페르시아문명 등이 속해있다. 그러나 이 지방에서 발굴된 기원전 4-7세기 경 루리스탄 청동기들은 수메르 문화로도 대표되는 기원전 2900-1250이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유물과는 구별이 되는 독특한 모습들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루리스탄 청동기 유물을 처음 획득한 것은 1854년이었고, 1920년대 후반이후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이 다량의 루리스탄 청동기 유물을 확보하였다. 이후에는 많은 양의 도굴된 루리스탄 청동기 유물들이 이란과 유럽의 골동품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나, 1938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고고학자들에 의한 루리스탄의 돌 무덤터에 대한 과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유물들의 대부분은 지역의 도굴꾼이나 국제 암거래상들에 의하여 유통이 되었고, 1980년대까지도 밀거래가 성행하였다. 이 청동기 유물들은 오직 일부분만 발굴된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전체의 고고학적 기록이나 역사적 의미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수도 있다.

현존하는 루리스탄 청동기유물의 전체 개수가 얼마나 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중에는 근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시장에 같이 섞여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수의 청동기들이 무덤이나 고대인들의 주술적인 종교적 장소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유물들이 매장된 것은 확실하나, 루리스탄의 경계나 문화적 경계가 어디 까지 인지도 알 수 없다. 말 장식품과 마구가 많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말과 마차가 이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청동 무기도 많이 발굴되었으니, 전쟁이 생활에서 다반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영적, 주술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오랫동안 종을 모아 오면서, 가짜 또는 복제품을 구입하여 낭패를 당한 경우도 제법 있었다. 복제품과 가짜 예술품은 수요가 많고 일반적으로 호응을 받는 품목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니, 내가 수집하는 종에는 가짜가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카리브해의 난파된 배에서 건져 올렸다는 철기 종은 1950년대에 멕시코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종이었고, 고색창연한 중국의 고대 종들도 대부분 근대에 사기를 치기위해 급조한 물품이었다.

2000년대 초에 이라크에서 흥미로운 고고학적 발굴이 있었다. 그것은 1,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위조 골동품인데, 이 골동품들은 이집트의 것으로 위조된 가짜 예술품으로 당시 가짜 예술품을 팔았던 아시리아 계통의 골동품 상점이 발굴됨으로서 세상의 얼굴을 내어 놓은 것이다. 천 년 전의 골동품 사기꾼들이 외국의 오래된 유물을 사려고 하는 부유층 고객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가짜 예술품들을 속여서 판매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역사서에도 그 시절 수도였던 장안에는 가짜 골동품이 많이 나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가짜 골동품, 예술품을 제작하는 것은 유사 이래 계속되어진 사기 행각이라 할 수 있다. 그 수법은 날로 과학화, 지능화되고 있어 가짜를 분별하기는 점점 어려울 질 것이다.

위의 사진은 1990년대에 구입한 중국 한나라 시대의 청동기 물품들이다. 푸른 녹이 쓸고 부분적으로 파손이 되어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몇 개의 작은 청동종과 화살촉으로서 미국과 중국에서 구입하였다. 필자는 이것을 최근에 복제된 가짜 골동품일 것이라 생각하고 구입하였기에 가짜라고 하여도 속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매자들은 여전히 한나라 시대의 진품 청동기라고 버젓하게 소개하며 한 점에 불과 2-3만원씩에 판매하고 있다.

종과 같은 금속공예품은 유난히 가짜가 많다. 금속공예품을 감정할 때는 그 물품을 들어보고 만져보며 진품을 판정한다고 한다. 오래된 금속은 골다공증의 뼈처럼 탄소화가 진행이 되며 금속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감정가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방법으로 냄새를 맡거나, 자기의 혀를 대어 본다고 한다. 진짜 오래된 물건들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으나, 약품으로 인공적으로 녹을 만든 가짜들은 아직 산화가 끝나지 않아서 역한 맛이 난다. 나도 중국에서 구입한 종에서 풍겨나던 역한 금속 부식용 약품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일본 골동품 상인들은 어지간하면 물건을 보며 가짜라고 잘라 말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 대신 ‘소중한 물건이니 고이 간직하라’고 말한다. 만약 진짜를 가짜로 잘못 판별한다면 그 순간 소중한 문화재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란다. 설사 가짜라도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멋진 골동품이 될 수도 있으니 잘 간직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수집을 하다보면, 터무니없는 물품을 비싸게 사거나 가짜를 구입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경제적인 손실 뿐 만아니라 정신적 충격도 크고 비교적 오래간다. 도자기를 수집하던 지인은 몇 차례에 걸쳐 중국에서 들여온 가짜 도자기를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후, 수집을 아예 포기하였다고 하였다. 나도 그러한 시행착오를 몇 차례 겪으면서 많이 단련되었다. 그러나 아마추어 수집가가 세계의 무궁무진한 고수 사기꾼들을 감당하는 것은 여전히 벅차기만 하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어디에나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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