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격투기의 신화 Pride FC는 왜 몰락했나
●이춘성의 세상 읽기(3)
격투기 100배 즐기기 ① / 격투기의 종류
얼마 전 황정민 주연의 ‘전설의 주먹'이라는 코믹 영화를 봤다. 혼자 10~20명을 때려눕힌 전설적인 동네 싸움꾼들이 과연 격투기 선수들과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동네에서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결국은 아마추어 싸움꾼이다. 아마추어가 프로 싸움꾼인 격투기 선수를 이긴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이 영화를 보면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격투기 선수, 레슬링 선수, 권투 선수, 킥복싱 선수를 망라하여 세계 최고의 프로 싸움꾼은 누구일까? 몇년 전까지 ‘60억분의 일’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던 러시아의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아니다. 표도르 시대는 오래 전 저물었다. 현재 최고의 싸움꾼은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헤비급 챔피언인 미국의 케인 벨라스케즈다. 프로레슬링 출신인 브록 레스너를 완벽하게 눕히고 챔피언이 된 벨라스케즈는 브라질의 주니어 도스 산토스와의 방어전에서 처참하게 KO패를 당했지만 1년 뒤 리턴매치에서 산토스를 KO로 누르고 다시 챔피언에 올라 현재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고로 구경거리 가운데 싸움 구경이 최고라고 했다. 동네 싸움도 그럴 진데 세계 최고의 싸움꾼들이 맞붙는 경기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간혹 동료 교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격투기 이야기를 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야구, 농구, 축구 등 어느 스포츠보다 재미있고, 누가 가장 강한지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 시켜주는 격투기, 이를 전혀 모르고 지내는 분들을 볼 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벤트를 놓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혹자는 격투기가 너무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권투 경기는 치명적인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지만 UFC, 프라이드, K-1 등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차하면 심판이 경기를 즉각 중단 시키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승부에서 느끼는 짜릿함과 동시에 안전성이 담보 된 것이 현대의 격투기이다. 격투기에도 프로레슬링과 같이 사전 담합이나 각본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이건 마치 올림픽 유도 경기에 담합이 있지 않느냐고 의심을 품는 것과 같다.
격투기에 생소한 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격투기의 전반적인 개요와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소개한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언급되는 선수들이나 기념비적인 경기는 대부분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어 이해가 훨씬 쉬울 것이다.
격투기의 종류
격투기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스탠딩 자세에서 경기하는 ‘입식(立式) 타격기’와 어떤 자세나 허용되는 ‘MMA(mixed martial arts)’의 두 종류이다.
입식 타격기에는 킥복싱, 가라데, 쿵푸, 권법 등 여러 종목이 있지만 1993년부터 K-1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어 세계 최고수를 가리고 있다. 故최배달 선생이 창시한 극진 가라데 정도회관의 이시이 카즈요시 관장이 여러 입식 타격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알파벳 K를 따서 K-1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매년 월드그랑프리를 통하여 최고수를 선발하여 왔다. 그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1은 메인 스폰서인 FEG(Fighting Entertainment Group)가 파산하면서 2011년부터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10년 K-1 챔피언인 네덜란드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경쟁단체인 MMA의 메이저리그 UFC에 데뷔함으로써 K-1은 그 존재 가치를 잃었다.
입식 타격기와는 달리 MMA는 ‘Vale Tudo’라고도 표현되는데, 이 단어는 포루투갈어로 “everything allowed”, 즉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NHB(no holds barred)’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된다. 킥복싱과 같이 스탠딩 자세에서 싸워도 되고 레슬링과 같이 누워서 싸워도 된다. 말 그대로 종합격투기인 것이다. MMA를 인기스포츠로 만드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단체는 일본 주도의 ‘Pride FC’와 미국 주도의 ‘UFC’이다. 특히 Pride FC는 짧은 기간에 격투기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1997년 10월 11일 도쿄돔에서 열린 브라질의 힉슨 그레이시(Rickson Gracie)와 일본의 다카다 노부히코의 ‘Pride 1’ 대결은 격투기 역사에 획을 긋는 경기로 평가 받고 있다. 400전 넘는 격투기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전설적인 파이터 힉슨 그레이시와 일본의 Hulk Hogan으로 대접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노부히코의 경기는 일본 영웅의 참패로 끝났지만 Pride FC가 세계 최고의 격투기 이벤트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노부히코의 제자 ‘사쿠라바 가즈시’의 맹활약, 도끼 살인마라고 불리우는 브라질의 반데레이 실바의 등장, Pride 헤비급의 3강으로 불렸던 표도르, 크로캅, 노구에이라의 경쟁 등으로 Pride FC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특히 표도르(Emilianenko Fedor)는 ‘60억분의 1’이라는 지구상 최강자의 칭호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게 된다. UFC를 우습게 보면서 격투기의 최고봉으로 승승장구하던 Pride FC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파국을 맞게 된다. 인기가 급상승함에 따라 돈이 몰리면서 야쿠자들이 Pride FC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후 추문이 끊이지 않았고, 팬들의 외면을 받다가 결국 2007년 미국의 UFC에 팔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Pride FC를 이끌던 최고 스타들이 UFC로 옮겨서 가진 데뷔전에서 대부분 처절한 패배를 당하면서 Pride FC 스타들의 지난 날 명성이 과장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1993년 Denver에서 케이블 TV를 포함한 대부분 대중매체의 외면을 받으며 초라하게 시작된 UFC는 후발주자 Pride FC의 위세에 눌려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Pride FC가 자멸하는 바람에 그 동안 Pride FC를 통하여 엄청 커진 격투기의 인기를 몽땅 차지하는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뒤늦게 UFC를 인수하게 된 다나 화이트(Dana White) 회장과 실질적인 소유주 페리타(Fertitta) 형제의 수완에 힘입어 현재 UFC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격투기 메이저리그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요약하면, 지난 10~20년 사이에 격투기는 권투, 프로레슬링 등 종래의 인기 투기 (鬪技) 스포츠를 완전히 누르면서 새로운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에서 주도했던 입식 격투기의 K-1, 종합격투기의 Pride FC가 인기 상승을 주도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쇠퇴하였고, 이들이 누리던 인기를 몽땅 차지하게 된 미국의 UFC가 종합격투기의 대세이자 major league가 되었다.
현재 격투기의 강국은 미국, 일본, 브라질, 네덜란드이다. 우리 나라는 김동현, 정찬성 선수가 UFC 경량급에 겨우 발을 들여놓은 초보 단계에 있다. 우리 이웃인 일본 국민들의 격투기에 관한 열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격투기 경기장에 5만 명, 심지어는 10만 명 가까이 모이는 것도 드물지 않다. 과거 사무라이 시대를 그리워하며 무(武)를 숭상하는 문화가 격투기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격투기가 글로벌화되면서 동양인의 체격이 서양인과 비교가 되지 않아 두드러진 일본 출신 스타가 없다는 점이 격투기 전체 흥행 면에서도 아쉬운 점이다. 격투기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본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점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