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남자로... 제대로 ‘사람’ 만드는 의사

남자는 남자로... 제대로 ‘사람’ 만드는 의사

 

백일기도 끝에 낳은 아들의 고환에 ‘알’이 없을 때, 불임시술 끝에 힘겹게 얻은 아기의 ‘고추’가 여성의 공알 모양으로 꼬부라져 있으면서 오줌길이 그 아래로 나 있을 때, 부모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게 마련.

연세대 세브란스어린이병원 한상원 원장(58)은 이런 부모의 고민을 해결해서 ‘사람’을 만들어주는 분야의 최고봉 의사다. 그는 지금까지 무려 2만 여명에게 성 정체성을 찾게 해준 소아비뇨기질환 치료 및 연구의 대가다.

별 보고 출근, 별 보고 퇴근..... 2만여 명 성 정체성 찾아줘

한 원장은 병원 임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지런하다. 요즘에는 가급적 오후 11시 전까지 퇴근하려고 노력하지만, 이전에는 자정이 지나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집 부근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고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며’ 퇴근했다. 선친인 한흥수 전 한일은행장의 “개인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일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애주가이지만 술 마실 시간이 없었고 골프 배울 시간도 없었다.

한 원장은 인턴 때 병원 전체에서 1등을 하고, 비뇨기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고단한 수련의 때 늦잠은 커녕 근무시간의 꾸벅잠도 없이 환자를 보면서 공부했고 온갖 일들을 도맡아 해서 스승과 선배들의 사랑을 받았다. 속초도립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재직할 때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기구를 빌려와서 치료할 정도로 환자를 돌보니 전역할 때 모든 직원이 환송회를 열어줄 정도였다.

스승 믿고 전공 전환... 스승 희생으로 소아비뇨기계 거목으로

한 원장은 이진무 주임교수의 권유에 따라 비뇨기종양을 전공할 뻔 했지만, 나중에 주임교수를 맡은 최승강 교수가 소아비뇨기과를 따로 만들고 이 분야를 전공하라고 권하자 군말 없이 따랐다. 주위에서는 “소아비뇨기과는 서울대병원에서 먼저 시작했고 최황이라는 거목이 있으므로 다른 것을 전공하라”고 만류했지만, 스승을 믿고 영동세브란스병원(현 강남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로 향했다.

스승은 얼마 뒤 자신을 믿고 따른 제자를 위해 자신을 버렸다. 스승은 “대가가 되려면 신촌에서 좀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며 “내가 영동으로 갈 테니까 자네가 신촌에서 꽃을 피워라”고 당부했다. 한 교수는 자리를 옮기자마자 독학으로 수술법을 연마해, 한 해 전국에서 밀려오는 400~500명의 아기를 수술했다.

한 원장은 성에 차지 않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신생아 중에서 비뇨기에 심각한 이상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서울 중구 묵동의 제일병원을 비롯한 여성병원들을 찾아가기도 해서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한상원이 누구야?”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한 원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환자의 경과를 알려줘야 했으므로 진료가 끝나고 밤늦게까지 차트를 다시 봐야했다. 그는 “환자를 두 번 보는 셈이어서 처방 오류를 줄일 수 있었고 병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40세 안팎에 요도하열과 소변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콩팥이 붓는 ‘수신증’의 치료에서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에는 음경을 펴주는 수술과 요도를 붙이는 수술을 한꺼번에 하는 수술을 개발해서 아이들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도 했다.

학회 활동-병원 행정에도 두각...바빠도 환자엔 늘 온화한 웃음

그는 진료뿐 아니라 연구, 학회활동, 병원 행정 등에서도 누구 못지않게 부지런했다. 1997~98년 미국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연수할 때 대한비뇨기과학회의 학술위원장이었던 최황 교수가 “소아비뇨기 분과가 생긴다”고 알려주며 특강을 요청하자 기꺼이 응했다. 한 원장은 “세브란스병원이 서울대병원보다 한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더 큰 역할을 해야 경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병원의 기획차장을 맡을 때 선배 교수가 “행정에 시간을 빼앗기면 환자 보는 데 지장이 있다”고 말리자 “병원에 기여해야 소아비뇨기과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일을 맡을 때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서 한동안 자정 이전에 퇴근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휴일도 마찬가지였다.

한 원장은 대한이분척추증학회 회장, 대한야뇨증학회 회장, 대한소아비뇨기과학회 부회장, 대한의학회 의료정책이사, 아시아-태평양 소아비뇨기과학회 회장, 대한비뇨기과학회 회장, 대한비뇨기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2018년 세계비뇨기과학회 서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 정회원이기도 하다. 병원에서는 기획차장으로 병원자원관리전산망(EPR)을 구축했고 교육수련부장, QI(품질향상) 실장 등을 거쳐 2014년부터 어린이병원장을 맡고 있다.

한 원장의 환자 보호자들은 한 원장이 이런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면 “설마…”하고 고개를 흔든다. 병원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1주일에 사흘 외래를 보고 나흘 수술을 하는데다 수술 환자 수는 2000명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진료실에서는 늘 바쁜 내색 없이 온화하게 아이를 다독거리기 때문이다. 한 원장으로서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아이의 생식기가 정상으로 회복돼 온가족이 웃음을 찾을 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낯모를 청년이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로 “저 선생님 환자였습니다!”라며 인사할 때 업무의 피로가 싸~악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소아비뇨기질환 베스트닥터에 한상원 원장

한상원 원장에게 물어본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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