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 쌍에 소중한 생명 선물... 강원래도 “감사”
차의과대학교 강남차병원 윤태기 원장(尹泰基·62)은 이름의 한자 뜻대로 불임치유라는 분야에서 ‘큰 터’를 닦아, 아기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태기(胎氣)’를 느끼게 해주는 의사다. 그는 각종 임신 시술법을 개발하고 보급시키며 아기를 갖지 못해 근심했던 부부 2만여 쌍에게 소중한 생명을 선물했다.
끊길 뻔 했던 대를 이어줘 준 경우는 부지기수다. 집안에 윤 원장의 사진이나 스크랩한 기사를 걸어놓은 이는 한 두 명이 아니고, 매일 아침 윤 원장이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을 향해 큰절을 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이도 있다.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클론의 강원래는 지난해 6월 김송과 사랑을 나눈 지 14년 만에 옥동자를 낳고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원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인구정책 따라 나팔관 묶다, 풀다... 최근 치료 영역 크게 밝아져
그는 대한민국 산부인과 의사의 숙명대로 ‘인구정책의 역사’와 함께 했다. 1980년대 초까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구호 아래에서 열심히 나팔관을 묶었다. 유부녀가 나팔관을 묶는 시술을 받으면 아파트 청약 우선권을 주던 시대였기에.
1980년대 중반부터 시대가 바뀌면서 아기를 선사하는 의사가 됐다. 몇 년 동안 산아제한 목소리가 수그러지고 ‘늦둥이’를 원하는 여성이 늘면서 예전에 묶었던 나팔관을 풀어주는 수술을 했다. 1990년대부터는 난자를 채취해 시험관에서 정자와 수정시켜 배아를 자궁에 넣는 ‘시험관 아기 시술’과 배란을 유도하는 약물치료로 아기를 원하는 부부에게 ‘복덩이’를 안겨주고 있다. 처음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때에는 부부와 가족이 ‘쉬쉬’하면서 시험관 수정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2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산부인과의 생식 분야가 세계 정상급으로 급속히 발전했지요. 요즘에는 ‘불임’이라는 용어 대신에 ‘난임’이라는 용어를 쓰고 ‘불임센터’(Infertility Center) 대신에 ‘임신센터’(Fertility Center) 또는 ‘난임 치료센터’ 등으로 부를 정도로 치료의 영역이 밝아졌습니다.”
한때 ‘낙동강 오리알’... 정성진료-인재경영의 차산부인과에 전격 발탁
윤 원장은 고교 때 생물 과목을 좋아해 의사가 아니라 생물학자의 길을 갈 뻔 했지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 진로를 바꾸었다. 마침 아버지 주치의의 동생이 존경했던 생물 교사였다. 스승도, 어머니도 의사의 길을 권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군병원의 외과 전문의가 “손놀림이 날렵해서 외과 체질이니 메스를 잡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전역 후 산부인과 고 곽현모 교수의 문하로 들어갔다.
“천성적으로 위험하고 과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칼을 쓰면서도 사고위험이 적어보이는 산부인과를 택했습니다. 아뿔싸, 수련의 시절 산부인과가 고소, 고발이 가장 많은 과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윤 원장은 1983년 봄 전공의를 마치며 서울의 모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내정돼 있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들떠 있던 교수의 꿈이 허물어지며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그는 두 달 동안 가슴에 뚫린 허망함을 채우고 장래를 계획하기 위해 전국의 산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당시 명의로 소문난, 서울 중구 을지로 차산부인과 차경섭 원장(현재 96세)의 연락을 받았다,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차 원장은 나중에 차병원과 차의과대학교를 설립해서 병원 옥상의 간장독에서 장을 담가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는 ‘정성 진료’와 의대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인재 경영’으로 우리나라 의료계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당시에도 비범한 의사였다. 임산부의 눈높이에서 진료했고, 개원가에 있으면서도 늘 의학서를 놓지 않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도 달통한 지성인이었다.
‘이상한 사람’ 소리 들으며 ‘신기술’ 잇단 도입... 불임시술 산 역사로
1984년 차 원장이 윤 원장을 불러서 “불임을 전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직까지 산아제한의 목소리가 채 가라않지 않은 시기에 미래를 예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변변한 교재 하나 없는 때였다. 윤 원장은 차 원장의 장남인 차광렬 현 차병원그룹 총괄회장(63)과 함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갔다. 새벽부터 자정 무렵까지 각종 자료를 복사해서 밑줄 그으며 공부했다. 1주일에 한두 번은 진료가 끝나는 즉시 건국대 수의학과로 찾아가 대학생들을 선배 삼아 동물실험의 노하우를 익혔다.
1986년 호주 멜버른 모나시 의대에 복강경 난자 채취법을 배우러 단기연수를 떠났다가 덤으로 초음파를 보면서 질로 기구를 넣어 난자를 채취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배워서 왔다. 몇 년 뒤 대한산부인과에서 ‘질 초음파 난자 채취법’에 대해 발표했을 때 일부 의사로부터 “이상한 사람”이라는 야유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새 채취법이 결국 대세가 됐다.
윤 원장은 이때부터 우리나라 불임시술의 역사를 써갔다. 1986년 국내 처음으로 나팔관 수정으로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데 성공했고, 민간병원에서 처음으로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했다.
1988년 미국 뉴헤이븐 소재 예일대의 프레데릭 나프톨린 교수 문하에서 생식학을 공부하고 귀국해서는 학문적 성과를 쏟아냈다.
1991년 미성숙 난자를 몸 밖에서 배양해 아기를 낳는데 성공했고 이 연구로 미국불임학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1998년에는 나팔관을 묶는 수술을 받았거나 나팔관이 좁아져 임신할 수 없는 여성의 나팔관을 복원시키는 ‘복강경 나팔관 미세수술법’에 대한 연구로 세계불임학회 및 미국불임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2005년 난자와 배아를 나중에 쓰기위해 얼리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서 캐나다불임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10년 전 백혈병에 걸린 여성이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얼린 난자를 해동시켜 아기를 낳게 했다.
만혼 시대... 아이 늦게 낳으려면 34세 전후 미리 난자 냉동보관을
윤 원장은 요즘 강남차병원의 원장으로서 차광렬 총괄회장을 도와 연말까지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에 아시아 최대인 5000㎡ 규모의 난임 치료센터를 오픈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합작으로 불임센터를 설립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00년대부터 저출산과 전쟁을 벌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후원군 사령관과도 같은 역할을 한 윤 원장은 많은 여성이 태기를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성들이 너무 늦게 결혼하고, 너무 늦게 임신하려고 해요. 뒤늦게 아기를 가지려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늦게 임신하려면 34세 전후에는 난자를 얼려 보관해야 합니다. 구글은 회사의 여직원이 결혼이나 임신이 늦어질 때를 대비해서 회사에서 난자동결 보관비용을 지원하는데... 그나저나 정부는 저출산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사실혼으로 사는 남녀도 많고 ‘결혼 전 임신이 혼수’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혼인신고를 안 하면 불임시술 지원을 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