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삭둥이도 살린, 미숙아들의 '제2 아버지’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박원순 교수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전공의를 모으기 힘든지는 오래. 특히 산과(産科)를 희망하는 의사들이 줄고 있다. 걸핏하면 응급상황이고 소송 당하기도 일쑤다. 많은 산과 의사들은 “그래도 신생아과 의사들 보면서 힘내며 산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소아과의 세부전공인 신생아과 의사들은 생명이 위태로운 아기를 살리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인다. 위기를 넘긴 아기가 갑자기 생명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해에 따른 비난과 의료사고 소송에도 덤덤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의 진료를 했는데도 구속되는 경우도 있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박원순 교수(62)는 그래도 자신이 신생아를 살릴 수 있는 데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는 의사다. 인터뷰 중에서도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감사한 일”이라는 말을 10여 번 했다. 감사 속에 살고 있는듯해서 “혹시 교회나 성당 다니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방금 전에 외래에서 어머니를 보고 왔어요. 큰 아이를 병으로 여의고 늦게 삼둥이를 낳았는데 미숙아였습니다. 두 명은 건강하게 집으로 갈 수 있었고 한 명은 식도결손이 있어 소아외과에서 수술해서 지금까지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소와외과 의사에게 감사하고, 또 지방의 집에서 매일 오가며 아기를 보살피는 어머니에게 감사한 일이지요.”
그는 옛날에는 살리기를 포기한, 손바닥 크기로 태어나는 아기들을 건강하게 살리는 분야의 세계적 고수(高手)다.
“일반적으로 아기는 엄마뱃속에서 40주 자라다가 평균 3.2kg의 몸무게로 태어납니다. 1.5㎏ 미만을 극소저출생체중아, 1㎏ 미만을 초극소저출생체중아로 부르는데, 30년 전만해도 1㎏ 미만 아기도 살리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500g도 거뜬히 살립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세계 최단 기간' 미숙아 생존 기록도
박 교수에 따르면 아기는 24주가 넘어야 폐기능이 정상화되기 때문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임신 25주 이전에 태어난 아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박 교수가 맡은 23, 24주 초미숙아들은 생존율이 80%에 가깝다. 2013년에는 엄마 뱃속에서 21주 5일 만에 490g으로 태어난 은혜를 살려냈다. 세계에서 가장 일찍 태어난 아기라는 기록이라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란 은혜가 보내온 감사편지에 더 고마워한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때 외과 의사가 되려고 했지만, 인턴 때 소아과에서 3개월을 근무하면서 ‘아기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소아과를 택했다. 소아과에는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윤일선 박사의 아들 윤종구 교수가 있었다. 윤 교수는 엄부 같은 분위기에 외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의사였다. 윤 교수는 국내 신생아학의 태두로 대학생 의료봉사동아리 송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설립도 주도했다.
“교수님은 꼼꼼히 아기를 보고, 영양제와 수액을 ㏄ 단위까지 치밀하게 체크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었지요. 신생아학이 미개척 분야라는 점도 마음을 사로잡아 교수님께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 교수는 공중보건전문의를 거쳐 모교 병원에서 전문의를 하다가 차병원 개원과 함께 스카우트돼 갔다. 1991년 스승이 “삼성이 병원을 짓는데 가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전 젊은 의사들을 뽑아서 해외 연수를 보냈으며 박 교수는 3년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LA의 병원에서는 당시 국내에서는 없던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를 통해 임산부와 아기를 치료하고 있었다. 매달 신생아 1000명이 태어나는 남가주병원에서 폴 우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미숙아 만성폐질환의 약물치료를 파고들었다. LA어린이병원에서는 김광식 교수 아래에서 유전자조합세균 연구를 공부했다.
그는 1994년 10월 삼성서울병원에서 미숙아를 치료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00명 정도의 아기를 치료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기들이 눈에 밟혀 도리질을 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치료율이 올라갔다.
“신생아 치료는 소아과 의사와 엄마의 협력뿐 아니라 다른 과 의사들과의 협력이 절대적입니다. 산부인과 노정래 오수영 최석주. 소아외과 서정민 이상훈, 소아심장과 강이석 허준 송진영, 안과 김상진 교수 등 수많은 의사 덕분에 많은 아기가 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분들입니다.”
박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2층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게끔 ▶보호자가 언제라도 아기를 볼 수 있는 24시간 면회 시스템 ▶엄마가 아기를 안도록 하는 ‘캥거루케어’ ▶엄마의 모유를 받아 아기에게 튜브로 투여하도록 개인별 모유를 보관하는 ‘모유뱅크’ 등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집중치료실에선 60명의 신생아가 단계별로 치료를 받습니다. 작은 손짓도 체크해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몸무게 10g의 변화도 알아챕니다. 특히 성세임 교수는 밤낮 주말 없이 환자를 보고 있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치료실 입구엔 이곳에서 생명을 찾아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의 사진과 감사편지가 꽂혀 있었다. 이 가운데에는 외국 어린이의 사진도 있었다.
“이 아이는 2006년 22주 만에 태어나서 생명을 되찾은 카메론 조셉입니다. 주한미군 병원에서 의뢰해 우리 병원에서 483g 몸무게로 태어나서 살아난 뒤 주한미군 가족들은 미숙아가 태어나면 미국 군병원 대신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하게 해달라고 조른다고 합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박 교수는 자신의 병원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병원에서 신생아 치료율을 높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 매년 봄 ‘삼성신생아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의사들이 정보를 교류하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500여명의 의사들이 참여했다.
그는 또 2014년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을 받아 배종우 강동경희대병원 교수, 김기수 서울아산병원 교수 등과 함께 극소저체중아를 출생 직후부터 생후 3년까지 추적 관리하는 한국신생아네트워크(KNN)를 만들었다. 처음엔 45개 병원, 지금은 70개 병원의 의사들이 매뉴얼에 따라서 환자를 보고 자신의 치료 성공률이 전체 대비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게끔 해서 우리나라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석천학술상, 유한의학상, 진암학술상, 남약학술상, 바이엘임상의학상 등을 받았다.
줄기세포로 신생아 치료 분야 이끌어
그는 기존의 치료법을 바꾸기도 했다. 아기는 엄마뱃속에 있을 때 심장과 폐 사이에 동맥관이 열려 있다가 출생과 함께 닫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긴 ‘동맥관개존’은 수술이 표준 치료법이었다. 박 교수는 수액을 적절히 투입하면 자연스럽게 닫힌다는 것을 입증해서 세계적 학술지 《소아과학회지》에 발표, 치료의 방향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통한 신생아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2005년 메디포스트 양윤선 대표를 만난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 팀과 메디포스트는 탯줄혈액에서 추출한 중간엽줄기세포로 미숙아의 폐 조직을 재생하고 염증을 줄이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2009년 《셀 트랜스플랜테이션》지에 쥐 실험 결과 논문을 발표했고, 2013년 《소아과학》지에 미숙아만성폐질환의 성공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미국 임상시험을 시작해서 최근 2차까지 완료했다. 그는 2014,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신생아학 핫 토픽 심포지엄’에 초청 연자로 미숙아 줄기세포에 대해 강의했다.
“줄기세포를 폐나 뇌에 넣으면 이 세포들이 유익한 단백질만 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폐뿐 아니라 뇌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치료법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더 없이 감사한 일이겠죠.”
박원순 교수님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