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은 안 듣습니까? ‘독백중독’이군요

타인의 비판이 무작정 두려운 사람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이어서 부쩍 외로워진 김영인(27) 씨는 좀처럼 응하지

않던 소개팅을 했다. 훤칠한 키에 깔끔한 옷차림. 첫인상은 좋았다. 그러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내내 이 남자는 김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인도로 배낭여행 다녀온 이야기,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이야기 등 자기 이야기만

이어졌다. 김씨는 ‘아, 이남자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하는 생각에 오늘 소개팅도

역시 ‘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자기 이야기만 신나게 하던 남자, 오늘 너무 즐거웠다며 다음에

만날 날짜를 정하자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던 이 남자를 또

만나야 할지 김씨는 좀 고민이다.

김씨가 만난 소개팅남처럼 주변에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 친구 중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이 친구의 전화는 받기가

두렵다. 열에 아홉은 할 말만 다 하고 전화가 뚝 끊기기 때문. 도무지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있는 친구다.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은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시즘이 있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서른살 심리학’의 저자 김혜남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느끼거나 표현하는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는 못하지만 자기 말은 사람들이 잘 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어 한다고 꼭 믿고 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신이 약하게 비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김 소장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영향을 줄까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까봐 비판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자리매김했다.

하교수가 쓴 책 ‘개같은 성질, 한방에 보내기’에 따르면 자기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칫 자기의 상처나 치부를 건드릴까 봐 두렵기 때문에 미리 선제공격

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은 ‘독백중독’상태에 있다고 표현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과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사람은 상처 받을까봐 꺼리는 자기방어적인

심리에서 공통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사람을 만났을 때 대화가 아닌 독백을 하는

것이다.

독백 아닌 성공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참는 것이 지루하지만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상대가

말하는 내용 가운데 내가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무엇인지 찾는다.

내게 재미있고 관심 있는 내용보다 상대의 안부와 근황을 살피고, 상대가 흥미를

갖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을 대화 주제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소개팅에서 만난 멋진 김영인씨도 다음 약속 때 제시간에 나타날

것이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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