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확대판’ 된 마라톤Ⅱ

<1편에

이어서…>

게브르셀라시에의 마라톤 기록 단축사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5·에티오피아)가 마침내 마라톤에서 2시간 4분대

벽을 깨뜨렸다. 게브르셀라시에는 9월28일 제33회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 기록(2시간

4분 26초)을 27초 앞당기며 3년 연속 우승한 것이다. 그는 100m를 평균 17.63초의

속도로 달렸다. 10초에 평균 56.7m를 달린 셈이다.

그는 지난해 이 대회를 뛰기 전부터 "2시간 3분대도 가능하다"고 큰소리를

쳐왔다. 올 우승 후에도 "날씨, 레이스 관중 등 모든 게 완벽했다. 정말 행복하다.

베를린은 나에게 행운의 도시다"라고 말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가벼운 장딴지

부상으로 대회 15일 전부터 1주일 가 량 제대로 훈련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날씨는 출발 기온 섭씨 8도에 골인 지점 섭씨 16도로 마라톤 레이스엔 안성맞춤이었다.

마라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과연 1시간대 진입은 가능한 것인가?

게브르셀라시에는 2006년 1월 미국 피닉스 하프 마라톤에서 58분55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만약 똑같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면 풀코스를 1시간 57분 50초에

끊는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게브르셀라시에의 하프 기록도 지난해 3월 완지루가 58분

33초로 22초를 앞당겨 버렸다. 같은 스피드라면 1시간 57분 6초에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내년 4월 런던 마라톤서 가능할까

이러한 추세라면 어쩌면 2시간 3분대의 벽도 ‘떠오르는 해’ 완지루나 ‘백전노장’

게브르셀라시에 둘 중에 한 사람에 의해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아마도 두 사람이

나란히 출전할 내년 4월 런던 마라톤이 그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게브르셀라시에(35)는 에티오피아 아셀라(해발 2430m)에서 태어났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산과 들로 뛰어 다녔다. 학교도 왼손에 책보를 꽉 쥐고 바람 같이

달려갔다가, 바람 같이 돌아왔다. 통학버스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집과

학교의 거리는 정확히 10km 거리. 그의 심장은 기관차 엔진처럼 튼튼했고, 그의 두

다리는 무쇠처럼 단단했다.

1992년 19세의 나이에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500m, 1만m를 석권하며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에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다르다면 트랙 위를 달린다는

것 뿐, 날마다 학교 오가는 것과 똑 같았다. 오히려 왼손에 책보가 없어 허전했다.

뭔가 가슴 한쪽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래서 트랙에서도 왼 손은 늘 책보를

쥔 폼으로 달렸다. 사람들은 왜 왼손을 구부정하게 늘어뜨린 폼으로 달리느냐며 수군댔다.

하지만 남이 뭐라던 그건 알바 아니었다.

스무 살 때인 1993년부터 95, 97, 99년까지 세계 선수권 1만m 4회 연속 우승.

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올림픽 1만m 우승. 크로스컨트리, 5000m, 1만m에서 24번

세계 기록 작성. 그 앞엔 거칠 것이 없었다.

세계 마라톤은 1908년 미국의 존 하예스의 2시간 55분 18초가 공식 집계된 이래

올해로 딱 101년째. 결국 101년 동안 51분 19초가 빨라진 셈이다. 1988년 4월 2시간

7분 벽이 깨진 뒤(에티오피아 벨라이네 딘사모, 2시간 6분 50초) 11년 6개월 만에

2시간 6분 벽이 깨졌고(99년10월 모로코 할리드 하누치, 2시간 5분 42초), 2시간

5분 벽이 무너진 것은 그보다 훨씬 짧은 4년만(2003년 9월 케냐 폴 터갓 2시간 4분

55초)이다.

결국 2시간 4분 벽도 5년 만에 게브르셀라시에에 의해 깨졌다. 2시간 3분 벽은

언제 깨질까? 게브르셀라시에는 "난 2시간 3분대까진 뛸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베를린에서 그렇게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적어도 2시간 3분 벽, 아니 2분 벽은 머지않아 그 아니면 완지루에 의해 깨질 가능성이

크다.
 

100미터 16초대 달리면 2시간 벽도 돌파

스포츠 생리학자들은 ‘2시간 벽은 깨지겠지만 1시간 55분때까지 근접하진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켄터키주립대 존 크릴 교수 팀은 날씨, 코스, 러닝화

등 최적의 조건으로 시뮬레이션할 경우 마라톤 풀코스 한계 기록이 1시간 57분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1시간 57분에 풀코스를 뛰려면 100m를 16초

63에 달려야 한다.

한국 마라톤의 장점은 은근과 끈기다. 하지만 현대 마라톤에선 그것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스피드가

부족한 선수는 아예 마라토너를 꿈꾸지 않는 게 낫다. 게브르셀라시에나 완지루의

발자취를 보면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는 방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게브르셀라시에는 19세 때부터 29세까지 세계 중장거리(1500, 3000, 5000, 1만m)를

휩쓸었다. 10년 동안 크로스컨트리, 5000m, 1만m에서 24번의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29세인 2002년에야 비로소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처음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

그는 데뷔 이래 단 한번도 2시간 6분대 이후로 느려진 적이 없다. 그만큼 스피드가

빠르다는 이야기다.

완지루도 2007년 4월 하프 마라톤에서 세계 최고 기록(58분 33초)을 세운 뒤 그해

12월 후쿠오카 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 우승했다. 역시 19세 때 게브르셀라시에처럼

세계 주니어 육상 선수권 1만m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결국 5000, 1만m,

하프 마라톤에서 세계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마라톤에서 한번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현대 마라톤은 ‘단거리의 확대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한 스피드 레이스다.

2시간 5분대를 달리려면 5000m를 13분 20초 이내, 1만m를 27분 대에 끊어야 한다.

5000m 세계기록은 에티오피아의 케네니사 베켈레의 12분 37초 35(한국 기록은 지영준의

13분 49초 99). 1만m 세계 기록은 역시 베켈레의 26분 17초 35(한국 기록은 김종윤의

28분 30초 54).

한국 마라톤 최고 기록은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 7분

20초. 이 기록은 1985년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스가 2시간 7분 12초를 세우며

넘어선 기록이다. 한국 마라톤은 세계에 딱 23년 뒤지고 있는 셈이다.

거리로 따져보면, 게브르셀라시에가 결승선에 골인할 때 이봉주는 정확히 1.108km

뒤처진 41.087km 지점을 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황영조-이봉주 이을 ‘천재’ 언제 나올까

아프리칸 독무대 속 한국 마라톤 살 길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초원을 천진난만하게 달린다. 힘도 들이지 않고 즐겁고

신나게 뛰어다닌다. 이들은 커서 자연스럽게 마라토너가 된다.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1932~1973)가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한 것은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만약 아프리카 국가들이 좀 더 ‘먹고

살만하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훨씬 이전에 올림픽을 휩쓸었을

것이다.

아베베는 올림픽에 나가기 전까지 공식대회에서 딱 한번밖에 풀코스를 달려 본

적이 없다. 생애 두 번째 마라톤 레이스에서 가볍게 목에 금메달을 건 것이다. 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이었다. 그는 내친 김에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우승했다.

이번엔 신발을 신고 달렸다.

달리기는 이제 흑인들 세상이다. 단거리는 중서 아프리카(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출신과, 미국 그리고 카리브 연안 흑인들이 펄펄 날고 있다. 장거리는

동부 아프리카(케냐, 에티오피아)와 남아공 흑인들이 우승을 휩쓸고 있다. 왜 흑인들은

달리기에 뛰어날까? 연구결과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케냐 칼렌진 부족, ‘세계적 준족’ 240명 보유  

다만 최근 미국의 생물학자 빈센트 사리히는 재미있는 통계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수 년 간 세계 각종 육상대회 성적을 토대로 케냐인들의 중장거리에 대한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마라토너가 나올 확률은 ‘케냐의 칼렌진 부족이

100만 명에 80명꼴 이라면 그 이외 다른 국가는 인구 2000만에 1명 정도’라는 것이다.

결국 인구 300만 명의 케냐 칼렌진 부족에 약 240명의 잠재적인 세계적 마라토너가

있다면 한국엔 잘해야 2, 3명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어쩌면 황영조, 이봉주

2명을 이을 천재가 당분간 나오기 힘들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왜냐하면 두 천재가

이미 나왔으니 확률로 보면 당분간은 더 나오기 어렵다는 계산인 것이다. 혹시 황영조만

천재로 인정한다면 1,2명은 더 나올지도 모른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 벵트 샐틴 교수는 30여 년 동안 동아프리카인들의 생리적

특징을 연구해온 학자다. 샐틴 교수는 말한다. “보통 인간은 심한 운동을 하면 근육에

암모니아가 만들어지면서 극도로 피로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부 아프리카인들은

심한 운동을 해도 유전적으로 근육에 암모니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톤 대회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5대 마라톤

대회’를 꼽는다.

1897년에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 뉴욕 시민들이 만들어낸

뉴욕 마라톤, 상금이 가장 많아 ‘마라톤 세계 톱10’ 선수들이 즐겨 찾는 런던 마라톤,

코스가 평탄해 기록이 잘 나오는 베를린 마라톤과 시카고 마라톤이 바로 그렇다.

 

베를린 마라톤 코스는 신기록 제조 산실

미국에 3개 대회가 있고 유럽에 2개 대회가 있다. 보스턴 대회는 ‘죽음의 코스’로

유명하다. 하지만 1회 이래 단 한 번도 코스를 바꾼 적이 없다. 그런 힘든 코스야말로

마라톤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를린 마라톤 코스는 런던, 시카고와 함께 `세계 3대 세계 기록 산실’로 불리는

곳이다. 올해까지 남자부에서 4개, 여자부에서 2개 등 총 6개의 세계 최고 기록이

나왔다. 2003년 폴 터갓(케냐)이 2시간 4분 55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게브르셀라시에가 4분대, 3분대를 잇달아 진입하는 등 역대 마라톤 1, 2, 4위 기록이

모두 베를린에서 나왔다.

런던 코스는 바닥이 돌로 된 부분이 많고, 시내 곳곳을 구불구불 도는 곳이 많다는

약점이 있다. 돌바닥은 그만큼 무릎에 충격을 많이 준다. 또한 굴곡이 많으면 아무래도

전속력으로 달리지 못한다. 대신 런던 대회엔 세계 톱스타들이 비싼 돈을 받고 대부분

오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이와는 약간 다르지만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대회’도 있다. ①이집트 사하라

사막 마라톤(250km) ②중국 고비사막 마라톤(250km) ③칠레 아카타마 사막 마라톤(250km)

④남극 마라톤(250km)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남극 마라톤은 사하라-고비-아카타마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2007년 1월에 열린 남극 대회에는

한국인 1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19명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 비용만 1만5000달러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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