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아들의 굴레, 우장춘의 인고는 궤양으로 남았다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우장춘 박사가 연구한 나팔꽃 표본. [사진=뉴스1]
아버지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아들이 대신 속죄한다고 갚을 수 있을까? 친일 급진개화파였던, 조선군 훈련대 제 2대대장 우범선은 명성황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했다. 1895년 민비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에 가담해 역사에 피를 묻힌 그는 바로 일본으로 망명하고 가정도 꾸렸지만, 18년 뒤 기회주의자 고영근에게 암살당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우장춘은 5살이었다. 생계가 막막한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酒井なか)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기 위해 두 아들을 고아원에 맡겨야 했다. 조선 말을 배우거나 김치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이 일본인처럼 살았다. 도쿄제국대학에 다닐 때 친했던 조선 유학생 김철수에게서 아버지의 엄청난 범죄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당시 조선인으로 우장춘(禹長春)이 할 수 있는 것은 성(姓)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일본 아내 와타나베 코하루(渡辺小春)와 결혼할 때도 꿋꿋했다. 조선인 사위를 반대하자 오히려 아내가 친정을 버리고 따라 나왔다. 조선인으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그를 후원하던 일본인이 데릴사위로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장춘은 끝까지 ‘단양 우씨’를 고집했다.

1935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이을 만큼 대단한 논문,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을 발표했다. 다윈이 ‘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우장춘은 ‘종의 탄생’을 밝힌 것이다. 이 논문에서 우장춘은 유채(油菜)가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배로 태어난 잡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논문의 저자는 영어로 ‘Nagaharu U’였고, 그가 제시한 ‘종의 합성’ 모델은 ‘우의 삼각형’(U’s Triangle)이라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그것도 일본에서 ‘조센징’(朝鮮人)으로 살려면 귀도 닫고 입도 닫고 얼마나 참아야 했을까? 어릴 때 고아원에서 따돌림 당하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짓밟혀도 끝내 꽃피우는 길가의 민들레’를 보여줬다. 하도 무뚝뚝한 아들의 얼굴이나 성격 때문에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얻자, 어머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하루 한 잔씩 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진=농촌진흥원]
한국인과 일본인을 부모로 둔 그는 어쩌면 배추와 양배추 사이에서 태어난 유채 같은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로 1950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말도 모르고 김치도 못 먹는 ‘일본놈’처럼 구박받았다. 1959년 향년 61세로 별세하기까지 고국에서 불과 9년 동안 그렇게 많은 농작물 품종을 개발하는 엄청난 업적을 세웠는데도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형틀’이 끝까지 그의 목을 졸랐다.

참고 참던 증세는 결국 위와 십이지장에 깊이 숨어있던 궤양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당뇨까지 겹쳤다. 1959년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병세는 돌이킬 수 없었다. 한 해 2번 수확할 수 있는 벼를 개발하기 위해 병상에서 봉지에 담은 싹을 관찰하던 그였다. 임종하기 전에, 이기작(二期作) 벼를 보지 못하고 먼저 죽게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 왼쪽부터 세종대왕, 최무선, 우장춘. [뉴스1]
배추도 아닌 양배추도 아닌 잡초처럼 떠돌던 우장춘은 죽기 사흘 전에 ‘유채’로 인정받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내와 가족이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농림부 장관도 찾아와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평생을 참고 기다렸던 대속(代贖)의 눈물이 결국 터졌다. “조국이 날 인정했구먼. 근데 좀 일찍 주지…”.

[십이지장 궤양] Duodenal Ulcer. 十二指腸 潰瘍

십이지장의 점막이 염증으로 상해 움푹하게 패인 상태다. 밥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 가슴뼈 아래 명치 쪽이 아프며, 장에 피가 새어 나와 검은 똥이 나올 수 있다. 헬리코박터 균이나 흡연으로 점막에 생긴 상처가 점막 아래까지 깊어져 생긴다.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쉽게 재발하며, 심해지면 십이지장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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