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어려운 의학용어’ 탓에…

美 설문조사, 韓 10개 용어 순화…일반 용법과 정반대 표현에 큰 혼선도

의사들이 쓰는 전문용어도 환자들의 눈높이에 최대한 맞출 때도 되지 않았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이나 한국이나 의학용어가 워낙 어려워 환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선 의사들이 쓰는 의학용어 중 일부가 일반적인 용법과 정반대의 뜻으로 받아들여져 큰 혼선을 빚는 등 문제가 적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에선 의학 전문용어 일부를 쉽게 바꾸는 조치가 최근 이뤄졌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미국, 의학용어 관련 설문조사= 미네소타대 의대 연구팀은 미네소타주 박람회에 참석한 성인 2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의사들의 표현을 거꾸로 이해할 수 있는 등 의학용어의 ‘모호함’ 탓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약 80%는 ‘특이 소견 없는(unremarkable)’ 흉부 X-레이가 좋다는 뜻임을 잘 알고 있었다. 특이 소견은 ‘특별한 이상 소견’이다. 반면 ‘인상적인(impressive)’ 흉부 X-레이가 나쁜 뜻이라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21%에 그쳤다. 이 문구를 ‘매우 건강한’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종양이 진행 중(Tumor Progressing)’이라는 표현을 그 정반대의 뜻인 ‘종양이 좋아지고 있다’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응답자의 약 5분의 1이나 됐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림프절 양성(positive lymph node)’이 림프절에 암이 퍼졌다(전이됐다)는 뜻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구의 주요 저자인 미네소타대 의대 마이클 피트 부교수는 “완벽하게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의학에서는 상반된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노스웨스턴대 의대 마이클 울프 교수(의료 커뮤니케이션)는 “암 검사에서 ‘양성(positive)’ 결과는 암에 걸렸을 수 있음을 뜻하며 ‘음성(negative)’ 결과는 암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용법과는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잠혈(Occult blood)’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대변 등에 피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다는 뜻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오컬트(Occult)라는 표현에서 초자연적인(supernatural) 생각을 떠올렸다. ‘잠재 감염(occult infection)’은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됐지만 증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뜻하나, 대부분 사람은 이 감염이 저주(curse)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을 의사들의 ‘전문용어 망각’ 탓으로 돌렸다. 의사들이 교육 과정에서 ‘똑똑한 용어’를 쓰도록 배우긴 했으나,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 전에는 그 전문용어의 뜻을 전혀 몰랐다는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이런 혼선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사협회는 의사가 환자에게 “방금 들은 말을 자신의 말로 쉽게 설명해보라”고 요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의학 전문용어와 관련된 문제가 생활에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의사협회지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실렸고 미국 건강매체 ‘헬스데이’가 소개했다.

◇한국, 의학 전문용어 표준화=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분야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 제정안’을 내놓았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는 작업의 시작인 셈이다. 우선 10개 용어를 손질하기로 했다. CT(시티)는 컴퓨터 단층 촬영, MRI(엠아르아이)는 자기공명영상, 경구투여(약)는 먹는(약), 객담은 가래, 예후는 경과, 수진자·수검자는 진료받는 사람·검사받는 사람, 자동제세동기는 자동 심장 충격기, 모바일 헬스케어는 원격 건강 관리, 홈닥터는 가정 주치의, 요보호 아동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으로 각각 바꾸기로 했다. 복지부는 쉽게 바꾼 용어를 사회 각계에서 널리 쓰길 바란다고 밝혔다. 완전 정착될 때까지는 종전 용어와 나란히 적는 게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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