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명칭 변경될까?…의학계 술렁

국내에선 한자 표기 안 해 뜻 몰라, 용어 변경 필요성 못 느껴

인슐린을 분비하는 역할을 하는 췌장 이미지.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으면 혈당이 상승해 당뇨병이 발생한다. [사진=magicmine/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의학계가 최근 당뇨병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당뇨의 ‘뇨’가 주는 나쁜 이미지 때문인데, 국내 의학계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20일 NHK 보도에 의하면 일본당뇨병협회 등 관련 학회는 1~2년 안에 당뇨병의 새로운 이름을 지을 계획이다. 당뇨병(糖尿病)의 한자를 풀이하면 ‘소변에 당이 있는 병’인데, 소변을 의미하는 ‘뇨’가 들어가 지저분하고 불결한 병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모든 당뇨병 환자의 소변에서 당이 측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명칭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처음 당뇨병 용어를 만들 당시에는 소변 검사를 통해 당이 있는지 판단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지만, 현재는 혈당 검사를 통해 당뇨병 여부를 판단한다. 당뇨병이라는 이름은 1907년 일본내과학회가 만든 용어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도 이 용어를 쓰고 있다.

당뇨병 명칭, 의미상 적절치 않아…변경엔 신중 필요

일본이 당뇨병 명칭 변경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변경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당뇨병학회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한자를 병기하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것 같은데, 우리는 한글로 표기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당뇨병이라는 용어를 크게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기관이나 법령 등에서도 당뇨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학회가 당뇨병 명칭이 적절한지 혹은 변경이 필요한지에 대해 검토하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뇨병이라는 용어가 현재의 의료 행위 및 기술에 부합하진 않지만 용어 변경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는 “당뇨병이라는 용어는 오래 전 당이 왜 소변으로 나오는지 모르던 시절 지어진 이름이다”며 “소변으로 당이 배출되는 건 고혈당으로 인한 2차 현상으로, 현재 명칭이 적절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바꾸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영어로는 당뇨병을 ‘Diabetes Mellitus’라고 하는데, 어원인 그리스어의 의미는 ‘당이 낭비된다’는 뜻이다. 학회 관계자는 “포도당이 열량으로 쓰이지 못하고 소변으로 빠져나가 낭비된다는 것으로, 이 역시 당뇨(糖尿)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어 명칭도 소변에서 당이 배출된다는 병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신분열증, 간질은 변경…치매 용어 논란은 현재 진행 중

국내 의학계는 당뇨병 명칭 변경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는 않고 있지만, 명칭이 변경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학회는 올해 초 ‘1형 당뇨병’ 명칭 변경을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에 대통령 공약으로 제안했다. 췌장 기능이 손상돼 평생 인슐린 투여를 해야 하는 1형 당뇨병은 장애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췌장장애’라는 용어가 보다 적절하다는 제안이다. 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투입을 받지 않으면 혼수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보다 직관적인 용어가 필요하다는 것. 현재 학회는 1형 당뇨병을 췌장장애로 보고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병명을 바꾼 뒤 국내에서 용어가 변경된 대표 사례도 있다. 일본정신신경학회는 ‘정신분열증’을 ‘통합실조증’으로 변경하는데 나섰고 2002년 병명이 변경됐다. 이후 국내에서도 대한정신분열병학회를 주축으로 명칭 변경이 추진됐고 2012년 조현병으로 병명이 바뀌는 법령이 공표됐다. 학회명도 대한조현병학회가 됐다.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것도 대표적인 병명 변경 사례다. 대한뇌전증학회는 간질로 인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2012년 ‘뇌전증’으로 용어를 변경했고 2014년 법령 용어가 뇌전증으로 바뀐 개정안이 고시됐다.

현재 질환명 변경을 두고 가장 떠들썩한 건 ‘치매’다. 일본은 2004년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꾸고  관련 법령을 개정했다. 치매(癡呆)를 그대로 해석하면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환자 및 보호자에게 수치심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국내에서는 대한치매학회가 인지저하증, 기억장애증 등 대체 용어를 찾고 있지만 아직 명칭 변경에 신중한 입장이다. 앞선 대국민 인식 조사에 의하면 국민 45%는 치매 명칭을 유지하든 바꾸든 상관없다고 답했고 28%는 유지해야 한다고 답해 70% 이상이 용어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치매에 담긴 의미보다 용어 변경 후 찾아올 수 있는 불편, 혼란 등이 더 크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병명을 변경하려면 국민의 호응도 등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당뇨병은 명칭이 가진 의미상 변경의 당위성이 있긴 하지만 실제 변경을 추진하려면 명칭에 대한 일반 국민 인식 조사 등 검토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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