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심한 당신… ‘멍 때리기’ 필요한 때?

트라우마에 각종 스트레스까지… 숨이 탁 막힌다면

모닥불을 보고 ‘불멍’을 때리든 별을 보고 ‘별멍’을 때리든 멍 때리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많은 국민이 이태원 압사 사고로 ‘트라우마’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약 6년 반 만에 대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대유행(팬데믹),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은 집값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한국인들이 ‘멍 때리기’를 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던 터다. 각종 스트레스로 정신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당장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미국, 영국의 건강매체 자료를 토대로 ‘스트레스와 멍 때리기’에 대해 짚어봤다.

멍 때리기는 국내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쯤으로 풀이되고 있다. 두뇌의 가동을 멈춘 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한국인의 ‘멍’에 대한 열망에 주목해 ‘멍 때리기’를 ‘Hitting Mu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적절한 영어 표현은 ‘Space-out’ 또는 ‘Zone-out’ 이라고 한다. 국내에선 ‘멍 때리기 대회’를 국내외적으로 개최하는 전문 사이트(https://www.spaceoutcompetition.com)도 있다. 이 사이트 운영자는 ‘웁쓰양 컴퍼니’다.

멍 때리는 시간…불멍, 숲멍, 물멍, 별멍 등 필요할 수도

최근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항상 자극을 받거나 ‘항상 켜져’ 있을 수 없다. 모든 일을 다 내려놓고 ‘멍 때리는 시간(downtime)’은 ‘뇌의 가동 중지 시간’에 해당한다. 어떤 마감시간도, 어떤 의제도 내팽개친 채 멈춰 쉬는 개념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불멍’을 때릴 수도, 피톤치드를 내뿜는 푸른 숲을 보고 ‘숲멍’을 때릴 수도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나 시야가 툭 터지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거나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멍’을 때려도 된다.

인간의 뇌에도 휴식과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헬스클럽에서 격렬한 운동을 한 뒤 회복하기 위해 근육에 휴식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정신적 휴식을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업무 수행 능력이 향상되고, 집중력과 주의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휴식 기간 중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거나 새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하면 번아웃(탈진) 증상이 나타나고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마음이 자유롭게 떠돌도록 ‘방황’ 허락해야

멍은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다. 개념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 중 하나인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다. 이는 기억, 자기 반성, 상상력 등의 과정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창의적인 솔루션과 관련된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전문가들은 잠자는 동안 뇌가 기억을 재구성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버리는 것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로운 정보의 연결을 확인하기 위해 뇌에도 ‘멍 때리는 시간(downtime)’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생활 속에서 정신적인 휴식을 제대로 취하기란 쉽지 않으나, 퇴근길 지하철이나 슈퍼마켓에서 줄서 있을 때나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릴 때 멍 때리기를 할 수 있다. 잠시 동안이나마 주의력을 흩어지게 한다.

멍 때리는 시간조차 갖기 힘든 이 시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뇌가 종합하려면 낮에 충분한 처리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스마트폰 탓에 ‘멍 때리는 시간’조차 사라진 세태다. 너무 바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걱정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문제가 더 커지고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 등 이런 문제가 떠오른다면 불면증을 비롯한 신체 건강의 문제로 직결된다.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문제를 되씹는 사람도 일부 있다. ‘멍 때리는 시간’은 뇌가 집중하려는 의식적인 노력, 감정 또는 외부 자극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만 비로소 가질 수 있다. 지루함은 ‘멍 때리는 시간’과 결코 같지 않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벽을 쳐다보는 것처럼 정신이 없는 상태(지루한 상태)에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정신적 ‘멍 때리는 시간’과 관련된 ‘자유롭게 떠도는 생각(freely wandering thoughts)’은 생기지 않는다. 진짜 멍을 때려야 창의적인 생각도 툭 튀어나올 수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반짝이는 최상의 아이디어가 모두 샤워를 하다가 나왔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멍 때리는 시간’ 은 따로 없다.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종사자에게는  ‘멍 때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지 알려면 그 날 하루의 기분과 정신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았고 뇌가 도무지 꺼지지 않는다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멍 때리는 것과 지루함은 아주 딴판…10분 동안의 침묵도 ‘금’

음악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면, 뇌는 외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음악을 틀고 1시간 뒤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해 재생 목록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뇌가 이완돼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즉 ‘멍 때리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확보하려면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산책을 하는 게 좋다. 설거지, 샤워 또는 간단한 집안 일로도 가능하다. 다만 팟캐스트, 텔레비전을 켜거나 음악을 듣지 않고 이런 신체활동을 해야 한다. 10분 동안의 침묵, 새로운 일로 넘어가지 전에 컴퓨터를 멀리한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침묵은 어떤 형태든 매우 강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명상 가운데 마음의 방황을 강조하는 일부 유형은 ‘멍 때리는 시간’에 해당할 수 있다. 대부분의 명상은 이 개념과는 정반대다. 예컨대 앉아서 호흡 수를 세는 것은 생각을 전환하고 감정을 진정시키는 훌륭한 방법일 수 있지만, 두뇌를 위한 여가 시간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형태의 명상은 주의를 집중시키고 생각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한다. ‘멍 때리는 시간’과는 아주 딴판인 셈이다.

‘멍 때리는 시간’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려면 직장과 가정의 경계선 긋기, 작업과 작업 사이의 물리적 경계 만들기, 재택근무 시 생활 공간과 업무 공간의 철저한 분리 등이 필수적이다. 가능하다면 하루 중 특정 시간 또는 주중 특정 시간에 이메일, 소셜미디어, 사이트 등을 모두 일시 차단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삶에서 어느 정도의 반추(rumination)는 모든 사람에게 정상이지만, 장시간에 걸쳐 어떤 일을 너무 자주 되씹고 있다면 신경정신과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반추는 강박적인 분석 과정이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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