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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대응, ‘8년’ 동안 준비했다?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우리 사회는 재난 트라우마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대형 참사 당시와 크게 달라진 지점이다. 이 배경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있었다.

사고 이튿날인 10월 30일 각종 미디어에서 전날 밤 사고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여과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학회는 발 빠르게 움직여 전 국민을 상대로 재난 트라우마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성명문을 통해 여과 없는 참사 보도와 사고 사진·영상 공유, 피해·생존자에 대한 비난, 혐오표현 자제를 요청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발 빠른 대응은 우연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사태 이후 지금까지 8년여에 걸쳐 추진해온 결실이다. 국민적 슬픔에 빠졌던 당시 의료계의 역할을 다시 성찰한 결과가 바로 재난 트라우마라는 설명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오강섭 이사장(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2014년 세월호 사태 당시 국민들이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음에도 정신의학계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허둥댔던 일을 반성했다”면서 “학회의 목소리가 ‘재난이 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모였고 이를 수렴해 (산하에) 재난정신건강위원회를 설립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와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현 재난정신건강위원장,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찬승 외래교수(마음드림의원·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의학위원회 홍보국장·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 등이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섰다.

재난정신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국내에 재난 트라우마 개념을 정립하고 의료진과 언론 일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난 정신건강 지원 임상 가이드라인, 재난 보도준칙 등을 마련했다.

정책적으로도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네트워크를 설립하고 법령(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0조)이 보장하는 재난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확립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의 전염병 상황에선 ‘심리방역’의 개념과 수칙을 정립하기도 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유실물 보관소에서 희생자의 유품을 찾은 유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사진=뉴스1]
현직 위원장으로 이번 참사에 대한 학회의 대응을 전담하고 있는 백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참사로 “많게는 1만 명에 달하는 인원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참사 발생 72시간 안에 심리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정부 역시 사고 발생 사흘째에 접어들던 지난달 31일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 심리지원 방침을 결정하고 곧바로 관련 프로그램 운영에 돌입했다.

학회 측은 이번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2차 트라우마 피해를 막기 위한 언론의 재난보도준칙 준수와 시민들의 소셜미디어 이용 주의 △트라우마 증상자의 회복을 위해 학회가 최선을 다해 함께 하겠다는 지지 선언을 담는 것에 방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오 이사장은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생존자들이 ‘세상은 위험한 곳’, ‘우리 사회는 살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이번 참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장면에도 주목해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많구나’와 같은 사회적 지지를 느끼고 트라우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향후 우리 사회가 무거운 참사의 기억을 무조건 덮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언론의 사고 증언 보도뿐 아니라 주변인과의 대화 등의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이 스스로 사고 당시를 기억해내고 스스로 얘기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장을 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오 이사장은 이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억지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말 것을 강조했다.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기억의 고통에 말을 하지 못한다면 조금 기다려주고, 괴로워할 경우 진심을 담은 위로와 현실적인 도움을 건네주세요. 피해자들이 ‘여전히 이곳이 살만한 곳이구나’라며 사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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