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동반자살 줄려면 ‘말기 돌봄’ 지원이 우선”

존엄사를 논하기 전, 말기 돌봄에 대해 고민이 우선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KatarzynaBialasiewicz/게티이미지뱅크]
말기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사 조력 자살’이라고 한다. 최근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맞는 방법을 논하기 전에, ‘존엄한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사 조력 자살 허용을 골자로 한다. 말기 환자에게 죽을 권리를 부여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우선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후 현 상황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제도가 생기면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하지만 죽음 대신 생애 말기를 좀 더 편안하면서 덜 외롭게 보낼 수 있는 ‘임종기 돌봄’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고민이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호스피스 이용이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정도다. 돌봄 시설과 인력도 부족하다. 학회는 “인프라 부족으로 대상 환자의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전 국회와 정부가 약속했던 존엄한 돌봄의 근간이 되는 호스피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 비암성 말기 질환자 돌봄에 관한 관심과 사회적 제도 정비 등은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말기환자 돌봄 현장은 더욱 악화됐다. 입원형 호스피스기관 88곳 중 21곳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고, 운영 중이던 나머지 기관도 가족 면회가 금지돼 환자들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일상회복으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도 고질적인 인력 및 재정 문제로 기관을 폐쇄하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시점 국회가 발의한 조력존엄사 법안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도 전에 환자들이 자살을 택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게 학회의 지적이다.

학회는 “매년 30여만 명의 우리 국민이 사망하고 있다”며 “대부분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임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병 살인, 환자와 가족의 동반자살, 간병비 마련을 위한 청년의 학업 포기 등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며 “자살률 세계 1위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의사 조력 자살의 법적인 허용은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한다”고 덧붙였다.

생애 마지막을 덜 쓸쓸하면서도 더욱 존엄하게 맞이하려면 조력존엄사를 논하기 전 ‘존엄한 돌봄’이 우선 논의돼야 한다는 것. 학회는 ▲돌봄을 위한 시설과 인력 확충 ▲말기환자의 호스피스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 등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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