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의약품은 양약인가 한약인가?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천연물이란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살아있는 유기체나 광물을 말한다. 천연물을 절단, 분쇄, 추출 등의 간단한 가공을 통해 그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이거나 이들로부터 약효성분을 추출하여 사용한 것을 생약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천연물의약품이란 이러한 천연물을 추출, 분획, 정제, 농축하여 얻은 결과물을 말한다.

천연물의약품 개발의 원조는 ‘아스피린’과 ‘페니실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하였고, 영국의 플레밍 박사가 푸른곰팡이에서 우연히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치료제로 유명한 ‘타미플루’의 경우도 팔각회향(star anise)이라는 중국의 천연물질로부터 개발되었고, 항암제인 ‘탁솔(paclitaxel)’의 경우에도 천연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다.

최근 화학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개발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대안으로 경험적 근거나 전통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천연물의약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천연물들은 임상적으로 사용한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고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는 천연물들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과 전통적인 이론이 한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잘 정립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연물의약품의 경우 화학물질을 이용한 합성신약보다 신약개발에 요구되는 시간이나 비용이 훨씬 적은 편이며 실패 확률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합성물질에 비하여 비교적 안전하여 장기복용이 가능하다. 참고로 천연물을 이용한 약품을 이전에는 천연물신약이라고 하다가 2017년 식약처는 생약이나 한약을 이용해 만든 천연물의약품의 경우 신약이라는 단어 뜻과 거리가 멀다고 하여 천연물의약품으로 이름을 수정하였다.

최근 한약이나 생약을 기반으로 천연물의약품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SK케미칼의 ‘조인스’, 동아ST의 ‘스티렌’과 ‘모티리톤’, 녹십자의 ‘신바로’, 안국약품의 ‘시네츄라’ 등이 식약처에서 판매허가를 받아 사용되고 있다. 위염에 사용되는 ‘스티렌’의 경우 애엽(쑥)을 통째로 추출한 것이고, 소화불량에 사용되는 모티리톤은 나팔꽃씨와 현호색의 덩이줄기에서 추출한 성분을 약제화해 만든 제품이다. 문제는 천연물의약품의 상당수가 한약재나 한약처방의 효능을 바탕으로 천연물에서 추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약제의 경우 단일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이러한 천연물의약품은 다양한 유효성분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어 각 성분을 명확하게 구명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천연물을 사용하여 제조하기 때문에 순도, 안전성, 동등성 등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러한 천연물의약품에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이러한 천연물의약품이 과연 양약인지 아니면 한약인지 여부이다. 많은 천연물의약품들이 한약재나 한약처방의 효능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하였지만 약물의 약효나 공정을 현대과학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이유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의사들만 처방이 가능하다. 이러한 정책에 대하여 한의사들은 한약재나 한약처방의 효능을 활용해 일정한 공정을 거쳐 개발된 천연물의약품을 한의사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가 되는 약은 바로 녹십자 ‘신바로캡슐’과 비씨월드제약의 ‘아피독신주’이다. 신바로는 천연물인 자오가(가이오가피), 우슬(쇠무릎의 뿌리), 방풍나물, 두충나무 껍질, 구척, 흑두(검은콩)라는 천연물을 한약을 기반으로 혼합한 것으로 주로 관절염 치료에 사용된다. 아피톡신은 이태리 꿀벌의 독을 전기충격법으로 추출, 건조한 순수한 밀봉독 건조물을 멸균생리식염수에 용해시킨 후 동결건조한 것으로 골관절염에 사용된다. 실제로 신바로와 제조법이 유사한 한약과 생벌의 봉독을 이용한 치료가 한의원과 한방병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한의사 A는 교통사고환자에게 신바로캡슐을 복용하게 하고 아피톡신을 이용하여 약침치료를 하였고 보험사는 위의 치료에 대하여 진료비전액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심평원은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재심사하면서 한의사가 신바로캡슐을 처방한 것은 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행위라고 하면서 처방한 약품비용을 삭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한의사 A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해 제조한 한약제제는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넘어선 처방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한의학적 입장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과 현대의학적 입장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천연물의약품은 사용주체가 다르고, ‘신바로’와 ‘아피톡신주’는 현대의학 입장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기준을 거쳐 품목허가를 받았기 대문에 한의사는 이를 처방하거나 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2022.3.31. 선고 2017다250264판결)

천연물의약품, 과연 누가 처방해야 합당할까? 의사인가, 한의사인가…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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