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못가져 눈물… 부부 웃게한 뜻밖 비법은?

[박문일의 생명여행] ⑪심신의학과 임신

심신(心身)이라는 것은 마음(心)과 몸(身體)을 한 단어로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몸과 마음의 정보는 하나로 공유돼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는 실제로 보이는 몸의 존재를 더욱 믿으려 하는 것 같다.

젊은 부부가 같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지요?”하고 물으니 “임신이 잘 안 돼서요”라고 한다. “얼마 동안 임신을 시도해 보았지요?”라고 다시 물어보니, “13개월간 꼬박 시도해 보았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한다. 13개월? 의사를 긴장시키는 대답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6개월, 1년 또는 2년 등으로 대답하는데, 이렇게 개월 수를 꼭 집어 대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피임하지 않는 부부가 12개월 간 임신이 안 되면 의학적으로 ‘난임’이라고 한다. 이 부부는 12개월 이후 1개월이 지나자마자 본인들이 스스로 ‘난임’으로 자가 진단하고 다른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 다시 필자의 병원을 찾은 것이다. 직업을 물어보니 부부가 모두 전문직이며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으로 한눈에도 부부가 모두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다. 부부는 내가 질문했던 모든 사항에 대해 미리 준비한 듯 또박또박 대답했다.

부부가 다시 묻는다. “선생님, 어떤 검사를 더 해야 하지요?” 그동안 타 병원에서의 검사기록을 찬찬히 살핀 뒤 이야기해주었다. “두 분의 검사결과는 완전히 정상입니다. 더 이상 검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두 분 모두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는군요. 명상이나 요가 등으로 우선 마음을 다스려 보시지요.”

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보더니 다시 묻는다. “아니, 선생님이 더 확실한 검사를 해주실 것 같아서 이 병원에 왔는데 검사가 없다니요. 명상이나 하면서 그냥 이대로 기다려야 한단 말씀이세요?” “그래요. 두 분 모두 몸에도 이상이 없고, 지금까지의 검사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추가검사는 필요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여유 있게 몇 개월 더 기다려 보세요” 부부가 실망한 듯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계속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분은 임신이 안 된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어요. 자신과 배우자에게도 서로 실망하고 있지요. 자신의 몸에 대해 우선 자신감을 가지고, 서로 믿고 격려하면서 임신이 된다는 확신감을 가지세요” 난임 극복에서는 스트레스를 가지지 않고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진료실을 나간 그 부부는 불과 3개월 뒤 임신이 돼 진료실에서 기쁘게 웃으며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위와 같이 권유하면서 ‘괜찮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다시 한번 검사를 해달라는 환자가 더욱 많은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검사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반복하는 환자일수록 임신까지의 기간은 늘어만 간다. 어떤 병이라도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신뢰할수록 치료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연임신을 해도 저절로 유산이 되는 환자들도 있다. 자연유산을 2, 3회 이상 반복하는 것을 ‘습관성 유산’이라고 하는데 원인불명이 50%에 이른다. 그동안 의학계에서 확립된 습관성유산 원인들 중에선 부모의 염색체이상, 태반혈관을 응고시키는 항인지질증후군, 쌍각자궁을 비롯한 각종 자궁기형 및 자궁경부무력증 정도만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중 자궁경부무력증은 조산의 중요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의 중요 원인과 기타 원인을 모두 합해도 습관성유산의 원인이 찾아지는 경우는 50% 미만이다.

갓 전문의가 되었던 시절, 갖가지 검사를 해봐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을 때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애매하게 이야기했었다. “정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원인 규명없이 치료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 일단 다시 임신을 시도해 보시지요.”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돌아가는 환자의 뒷모습에 의사로서의 자괴감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경험이 점차 쌓인 요즘은 다음같이 이야기해준다. “현대의학을 총동원해서 각종 검사를 했는데도 나타나는 원인이 없으니 환자분은 정상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임신을 준비하세요.” 안심하고 돌아간 환자들의 예후는, 원인이 밝혀져서 해당 원인을 치료한 후의 환자들과 임신 성공률이 비슷하다. 원인 불명의 습관성유산 치료를 절망이 아닌 긍정적 희망으로 여기도록 돕는 것, 이것은 바로 환자의 마음을 치료하여 마인드 에너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 의학계에서도 전체 습관성유산의 가장 많은 요인으로 지목 되는 ‘원인 불명’일 때 이른바 ‘Tender loving care(따듯한 사랑의 보살핌)’만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경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습관성유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불안감이 상당히 높으며 임상적으로 우울하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지원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산부인과 영역뿐 아니라, 현대의학적으로 모든 질병에 대한 치유 가능성이 어느 레벨로 진전하든지 간에, ‘첨단기술 과학’과 ‘부드러운 사랑의 보살핌’이 현명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의사들도 항상 주의 깊게 듣고 상담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몸이 과학으로 치료됨과 동시에 마음은 사랑의 보살핌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신의학의 배경이다.

옆 진료실의 후배 의사가 언젠가 나에게 그랬다. “아니 선배님, 환자에게 ‘명상’만 하라고 하면 진료비를 어떻게 받지요?” 물론이다. 처방전에 ‘명상이나 요가를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하시오’라고 적으면 병원수입은 기본진찰료 외에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돈이 쌓이겠지요”라는 내 말에 후배 의사도 씁슬하게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