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러시아 독감’도 코로나 바이러스 짓?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889년 5월 당시 러시아제국의 일부였던 부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돼 병들고 죽기 시작했다. ‘러시아 독감’으로 명명된 이 역병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갔다. 이로 인해 병원마다 환자로 넘쳐났고 특히 노인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학교와 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다. 감염자 중 일부는 후각와 미각을 상실했고 회복된 사람들 중 일부는 만성피로를 호소했다. 적어도 3차례의 유행 파동을 보인 러시아 독감은 몇 년 후 사라졌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이러스학자와 의학사가들이 19세기말 유행했던 러시아 독감은 코로나바이러스 유행병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러시아 독감의 사례에서 코로나19의 미래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러시아 독감을 유발했다면 병원체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고 그 병원체의 후손들이 감기증세를 일으키는 4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 중 하나로 세계 도처를 돌고 있을 수 있다. 인간에게 전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7종류가 알려졌다. 그중 코로나19와 사스(SARS)와 메르스(MERS)를 제외한 4종류(229E, NL63, OC43, HKU1)는 계절성 바이러스로 매년 독감처럼 유행하고 있다. 러시아 독감을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4종류 중 하나였다면 코로나19도 치명성은 덜해지겠지만 독감처럼 매년 유행할 수 있기에 매년 백신을 맞아야할 수 있다. 반대로 코로나19와 사스, 메르스 같은 치명적 종류라면 수십 년에 한번 꼴로 팬데믹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극소수의 러시아 독감 연구가인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톰 유잉 교수는 러시아 독감이 코로나바이러스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하버드대 스캇 포돌스키 교수(공중보건학)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건대 아놀 몬토 교수(역학) 역시 “매우 흥미로운 추측”이라고 답했다.

《미생물생명공학저널》의 편집장인 스위스의 미생물학자인 하랄 브뤼소우 박사도 OC43가 1890년에 소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됐을 가능성을 지적한 2005년 논문을 거론하며 OC43가 러시아 독감 대유행으로부터 남겨진 변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브뤼소우 박사는 러시아 독감 유행할 당시의 신문과 잡지 기사, 정부 보고서를 분석해 환자들이 미각과 후각 상실 그리고 ‘장기 코로나19’ 증세를 호소했음을 밝혀냈다. 일부 역사가들은 19세기의 ‘세기말적 분위기fin de siècle)’가 실제로 러시아 독감의 후유증으로 인한 피로감과 나른함의 산물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예일대의 프랭크 스노든 교수(의학사)는 “러시아 독감 유행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거의 없다”면서 러시아독감이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가설은 “환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아이칸의대의 피터 팔레스 교수도 “현시점에서 러시아 독감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측일 뿐”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 미스터리를 풀 방법이 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러시아 독감 희생자의 보존된 폐 조직에 있는 바이러스 파편을 분석해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하버드대의 포돌스키 교수와 하버드대 워렌 해부학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도미니크 W 홀은 러시아 독감이 유행하던 시절의 폐 조직을 보존하고 있을지 모를 박물관과 대학병원을 찾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의과대의 무터 박물관은 19세기 후반의 해부학 표본을 노란 액체가 담긴 항아리에 보존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안나 도디 학예실장은 그 항아리에 “삶과 죽음의 정보가 담겨 있다”면서 “자금과 기술만 있다면 충분히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러시아 독감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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