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원, 환자 재산분쟁 불똥 맞은 이유는?

[서상수의 의료&법] ⑩진료기록부 사본발급 동의서 서명 누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병원 원무과 직원 A 씨는 입원 치료 중인 환자 B 씨의 맏아들 C 씨가 아버지의 진료기록부 사본을 떼 달라고 신청하자 평소처럼 친절하게 발급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지극히 돌봐왔고 병원비를 계속 납부해 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료기록부 사본 발급 동의서’를 받고 신속히 사본을 떼 준 것.

그런데 얼마 뒤 경찰서로부터 난 데 없이 ‘의료법 위반죄’로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C 씨가 제출한 ‘동의서’에 환자인 B 씨의 서명이 빠졌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사본을 발급해서 법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하면서 확인했더니 정말이었다. 그걸 못 보다니….

실상은 B 씨의 두 아들에게서 벌어진 재산분쟁의 불똥이 애꿎게 A 씨에게 튄 것이었다. B 씨가 자기를 돌본 장남에게 유산을 더 많이 물려준다고 유언하자, 차남인 D 씨가 “아버지는 치매 증세가 있어서 정상적 의사능력이 없으며 법정 대리인을 선임해서 재산을 다시 분배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C 씨는 아버지의 진료기록부를 법원에 제출해서 아버지의 온전한 뜻임을 알리려다가 절차상 실수를 저질렀다. D 씨는 이것을 아버지의 유언을 뒤집을 꼬투리로 삼았고 여파가 A 씨에게까지 미친 것.

그렇다면 이 경우에 A 씨는 의료법에 위반하여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한 것으로 인정돼 형사상 처벌을 받을까?

진료기록은 환자의 매우 내밀하고 민감한 개인정보이므로 의료법은 원칙적으로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통해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미성년자의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 △환자의 가족 △환자가 지정한 대리인 등이 환자의 동의서와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 등을 제출하면 열람할 수 있다. 환자가 의식이 없어 동의 표시를 못할 때 가족이나 친권자 등이 이를 입증하는 서류를 내면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A 씨는 원칙적으로는 적법 유효한 환자의 동의서 없이 아들에게 환자의 진료기록부 사본을 발급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죄로 형사상 처벌 여지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의료사건을 전담하는 경찰 의료사건 팀은 A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의료법위반죄는 고의범만을 처벌하고, 과실범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따라서 검찰은 비록 A 씨가 환자의 동의서에 환자의 서명이 빠졌더라도, 아들 C씨의 고의성 여부와 별개로 A 씨에게 고의가 없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 ‘혐의 없음’의 불기소결정을 했다. A 씨가 비록 실수했지만 이 때문에 그에게 돌아갈 이익이 없다는 점과 이 서류의 흠이 두 아들의 법적 다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 등이 반영된 조치였다. 법원은 검찰 결정과 별개로, B 씨의 진료기록부를 근거로 환자의 정신이 온전하고 유언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병든 자신을 정성껏 돌본 장남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아버지의 뜻이 인정받았다.

이처럼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원치 않는 송사에 휘말려 속을 태우며 마음고생을 할 수 있다. 일반인도 환자 진료기록부 열람 절차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는 위법의 올가미를 쓸 수 있다. 위 사례에서 만약 검찰이나 법원이 상식과 법정신을 고려하지 않고 형식만 따졌다면 애먼 전과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다행히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됐지만, A 씨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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