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장기화에 저소득국 의료 인력 유출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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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의 장기화로 의료 인력이 부족해진 고소득국이 저소득국 의료 인력을 스카웃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저소득국 의료공백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프리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의 베테랑 간호사인 알렉스 물룸바(31)는 최근 캐나다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글로벌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인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그의 현재 수입인 월 415달러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제안하는 고소득국 병원들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대형병원에서 신생아실 담당 간호사인 마이크 노베다는 “우리 부서에 15명의 간호사가 있는데 그중 절반은 해외 근무 신청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 6개월 뒤엔 절반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염병이 3년째에 접어들고 전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종으로 인한 감염이 급증함에 따라 의료 인력 부족은 만성화가 됐다. 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8만 명의 의료 인력이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과로로 숨졌다고 한다. 미국의 의료 인력의 약 20%가 팬데믹 기간 직장을 그만뒀다. WHO는 지난 1년간 80개국 이상에서 보건노동자들의 파업과 집단활동에 나섰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발생한 노동쟁의의 수치를 합친 것에 맞먹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고소득국과 저소득국 가릴 것 없이 의료 인력의 고갈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의 힘에 의해 고소득국이 저소득국 의료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데 있다.

물룸바 씨가 이민을 고려 중인 캐나다는 미국, 영국과 함께 팬데믹으로 고갈된 의료 노동력 보충을 위해 저소득국 의료인력 모집에 가장 적극적인 고소득국의 하나다. 캐나다는 레지던시를 위한 언어 요건을 완화하고 해외 간호사의 자격 인정 절차를 간소화시켰다. 영국은 2020년 해외 의료 인력을 충원할 때 비자 비용을 줄여주고 처리속도를 높이는 ‘건강 및 관리 비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북유럽국들은 해외 의료인력을 위한 새로운 패스트 트랙 이민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은 해외 의료진의 의료경력을 인정해주는 새로운 자격증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노인요양을 맡을 해외인력이 상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국제간호사협의회(ICN)의 하워드 캐튼 회장은 “간호사의 국제이주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간호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의 간호사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제채용회사인 ‘오그래디 페이튼 인터내셔널’의 시네이드 카베리 사장은 ”아프리카 국가, 필리핀, 카리브해에서 매달 약 1000명의 간호사가 미국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해외 간호인력을 충원해왔음에도 현재 미국 의료시설의 간호사 수요는 한 세대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 대기자 명단에 오른 외국간호사만 1만 명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국가의 보건정책 자문역을 맡은 영국 헬스재단의 제임스 뷰찬 선임연구원은 2020년 중반 이후 영국에 등록된 국제간호사의 수가 급증하고 있어 “올해가 지난 30년을 통틀어 최고로 많은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WHO 회원국들은 ‘국제 보건인력 채용에 관한 국제 실천 규범’을 채택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국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간호사와 의사의 엑소더스(대탈출)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 규범은 개인의 이주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의 의료 인력을 충원할 때 해당국이 지정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지원을 의무화했다.

또 해외 채용된 의료인력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귀국시키도록 하고 있다. 캐튼 ICN 회장에 따르면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팬데믹 이후 이 규범을 무시하거나 우회하는 고소득국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캐튼 회장은 “해외 채용된 간호사들은 돌아갈 의사가 없으며 가족들까지 데려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팬데믹이 의료진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이동할 수 있는 개인적 자유와 그들에게 의료교육의 혜택을 줬던 모국의 환자들에 대한 의무 사이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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