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속 ‘아이스 맨’ 인류 과거 밝혀낼까

미라 ‘외치’ 지놈지도 작성…연구 본격

알프스 산맥의 빙하 속에 5300년간 묻혀 있던 미라의 전체 지놈(유전정보)지도가

작성됐다고 지난주 영국 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1991년 발견된 이 미라는 ‘외치’

혹은 ‘아이스 맨’으로 불린다. 지도를 만든 ‘유럽 미라와 아이스 맨 연구소’에

따르면 외치는 갈색 눈에 혈액형은 O형이고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농경민 출신이다.

 지난 21년간 법의학자, 분자생물학자, 고인류학자 등은 외치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키 1m65cm, 몸무게 50㎏에 45세 정도였던 이 남자는 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구리 시대’의 인물이다. 구리 도끼를 지녔고 가죽제 신발·바지·모자와

식물로 엮은 망토를 착용했다. 충치와 편충이 있었고 요추, 골반, 허벅지, 정강이,

발목의 뼈와 관절이 닳고 변형된 상태였다. 이들 부위에 있는 십자형 문신은 치료를

위한 원시적 침술의 결과로 추정된다. 중국 침술보다 2000년 이상 앞선 사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망 원인은 화살이 어깨뼈를 뚫고 쇄골 아래 동맥을 찢어버린 탓으로 판명됐다.

화살대는 생존 당시 누군가 빼냈고 돌 화살촉만 몸속에 남았다.

 범인은 동족이었을 수도 있다. 화살촉의 뿌리 부분이 평평하지 않고 돌출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된 북부 알프스가 아니라 당시 남부 알프스와 북부

이탈리아에서만 쓰였던 촉이다. 외치의 물품과 복장은 남부 알프스의 것이다. 2002년

이탈리아 토렌토대의 한 교수는 이를 근거로 ‘동족 살해설’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원정길의 전사였을지 모른다. 화살을 포함해 손에 난 커다란 상처와 외투의

핏자국 등은 전투의 흔적이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사망 장소다. 장 속에서 발견된 꽃가루는 봄철의 것인데

부근의 얼음에선 늦여름의 꽃가루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려는 이론은 2010년

‘고대(Antiquity)’ 저널에 발표됐다. 저지대에서 사망한 몇 개월 뒤 해발 3200m까지

힘들게 옮겨 매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분은 추장급이다. 매장지는 발견된

곳 근처의 넓적한 바위였으나 얼음이 녹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사체가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왼쪽 팔이 이상하게 뒤틀린 위치에 가 있는 게 문제다. 중요 인물이라면

팔을 자연스럽게 펴 매장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번에 완성된 지놈 지도는 연구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연구소 측은 “아직

기능을 모르는 유전자가 수백만 개”라면서 “미래에 이를 밝히고 나면 5000년 전의

세상이 어땠는지를 되짚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욱 미디어본부장·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

(poemloveyou@kormedi.com)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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