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럼 잘못 깨물면 이빨에 ‘악’ 소리

대보름 때 부럼-치아 충돌사고 조심해야

“아그작, 두둑 두둑.”

1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 때 부럼 깨무는 소리다.

오는 9일은 정월대보름.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며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했다.

부럼은 잣, 날밤, 호두, 은행, 땅콩 따위를 말한다. 부럼을 깨물면 올 한 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단단해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고교생 김성현(18) 군은 작년 대보름 때 부럼을 깨물다 봉변을 당했다. 호두를

골라 힘껏 깨물었는데 어금니가 부러진 것. 그는 부러진 어금니를 들고 치과에 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건강한 성인의 치아는 호두를 깨물어도 대개는 큰 이상이 없다. 하지만 어린이나

노약자, 치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잘못 부럼을 깨물면 이가 부러지거나 흔들리고,

피가 나는 등 ‘부럼 사고’가 날 수 있다.

서울대 치과대 치주과학교실 김태일 교수는 “대보름 다음 날이면 부럼 깨물다

이가 상해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며 “좋은 뜻에서 이어지는 관습이지만

호두처럼 단단한 견과류를 깨무는 것은 병뚜껑을 치아로 따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부러진 치아는 우유, 식염수에 담가 옮겨야

치아에는 미세한 결이 있다. 호두나 밤, 땅콩 같은 단단한 음식을 씹으면 치아

결을 따라 금이 갈 확률이 높아진다. 단단한 것을 깨물 때 턱과 치아에는 최대 50kg

정도의 압력이 가해진다.

김태일 교수는 “이와 턱이 견딜 수 있는 힘 이상이 가해지면 치주 조직에 염증이

생길 수 있다”며 단단한 것을 무턱대고 깨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금니, 레진, 크라운 같은 치과 치료를 이미 받은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치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응급처치 요령을 알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잇몸에서

피가 나면 거즈나 깨끗한 천을 물어서 피가 계속 나는 것을 막는다. 이가 빠지거나

부러졌다면 떨어져 나간 이를 찾아 치아의 인대, 조직 등 성분이 망가지지 않도록

우유, 식염수 등에 담가 치과로 가져간다.

김태일 교수는 “부러진 이를 혀 밑에 넣고 가는 것이 최고지만 불편할 수 있으므로

우유, 식염수 등에 넣어 가면 된다”며 “수돗물에 씻거나 넣어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수돗물은 치아에 붙어 있는 인대 조직 등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아가 완전히 빠진 경우엔 1시간 안에 치료를 받아야 다시 심을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서둘러 치과를 찾아가야 한다.

부럼 ‘두둑’ 깨물다 턱관절도 ‘두둑’

부럼을 깨물다 턱관절의 뼈를 지탱하는 인대 등 치주 조직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응급 조치로 통증 부위를 10분 정도 얼음찜질 해 준다. 통증은 없어도

‘아’ 하고 입을 벌리는 데 불편하다면 뜨거운 물수건으로 20분 정도 찜질해 턱

근육을 풀어 주면 좋다.

찜질을 해 줬는데도 턱에 통증이 있거나 입 벌리기가 불편하고 턱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면 턱관절 염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경우 치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연령대별로 견과류 다르게 깨무세요

대보름에는 깨물어 먹는 부럼의 종류를 나이별로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나이에

따라 치아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린 10대는 영구치가 자리를 잡아가는 연령대이므로 땅콩, 잣 등 비교적 딱딱하지

않은 부럼을 골라 먹는다.

중-고생은 사랑니가 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금니 쪽에 자극이 덜 가도록 밤,

땅콩, 은행 정도가 적당하다. 껍질이 단단한 호두는 피한다.

건강한 치아를 가진 20대라면 호두 정도는 깨물어도 무방한 경우가 많지만 치아를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치아 좋게 하는 것은 부럼이 아니라 채소, 과일

대보름 때 관습대로 나이만큼 부럼을 깨물면 치아 손상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따라서 ‘몇 번을 깨무느냐’에 연연해하지 말고 ‘어떤 부럼을 깨무느냐’로 관습을

수정할 필요도 있다.

김 교수는 “이를 튼튼히 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자극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호두처럼 딱딱한 것을 깨문다고 치아가 튼튼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사각사각 씹을 수 있는 채소, 과일 등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이 치아를 튼튼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정은지 기자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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