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키 집단 히스테리 사회’

키 강박장애에 신체이형장애까지 / 불안 열등감의 표출 ··· 뇌 변형도

 

여고 1년 최 모 양은 키가 150cm. 주위에선 귀엽다고 하지만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

탓에 키워드(Keyword), 키위(Kiwi) 등 ‘키’ 자만 들어도 속이 뒤집힌다. 지난해

6개월 동안 매일 성장호르몬주사를 맞았지만 별 효과를 못 봤다. 최근 의사로부터

“더 클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뒤 진료실에서 짜증을 부리고 집에서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던지며 난동을 부리곤 한다.

회사원 김 모 씨(32)는 소개받은 여성에게 ‘차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165㎝의 작은 키 때문에 여자들이 얕보는 듯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혼정보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다 업체 직원으로부터 ‘물 관리’를 위해

남자는 170㎝, 여자는 158㎝가 넘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다.

대한민국이 키에 대해 ‘집단 히스테리’ ‘집단 강박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

신체의 특징일 뿐인 키가 사람을 판단하는데 우열의 기준이 되는 독특한 문화로 온

나라가 과민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

부모들은 자녀가 4~5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성장판 검사를 시킨다. 아이들은

매일 고통을 참아가며 효과가 불확실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170㎝의 키가

작다며 정강이뼈를 자르고 1년 동안 신음 속에서 목발을 짚고 뼈를 늘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인이 큰 키를 선호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중앙대 독문과 진중권 교수는 “외적 이미지가 능력과 돈이 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키에 집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의대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부모들의 키에 대한 집착은 과거 키 때문에

가진 열등의식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자연적인 심리적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작은 키에 대한 차별이 횡행하고 구성원들이 맹목적으로

키에 집착한다면 차원은 달라진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이를 일본인보다

지독한 한국인의 ‘왜소(矮小) 콤플렉스’로 진단했다.

의사가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하는데도 고집을 부려 성장호르몬주사를 맞는다든지,

“당신의 키는 정상이며 수술을 받으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고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술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병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원장은 “실제로 키에 대한 집착이 우울증, 강박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강박장애는 특정 사안에 집착해 정상생활이 불가능한 질환. 이 장애는 뇌에서

행복감을 증가시키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감소하며 생긴다. 강박장애 환자는 뇌의

눈확이마엽, 앞띠다발, 시상 등이 활발해지고 뒤가쪽이마엽 움직임은 느릿해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또 키에 집착하는 이들 중 일부는 ‘신체이형장애’ 증세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자신의 키가 정상인데도 자꾸 작게 느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키에 집착하는 것은 내실보다는 규모, 인품보다는 외모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으며 뿌리에는 열등감과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아정체감이 약한 사람은 본질보다는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음식 맛과 서비스에 대해 최고의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간판에

집착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사회의 독특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역시 키 강박장애의 원인이 된다.

“사회가 격변하면 구성원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공동의 흐름에 매몰돼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남들이 자녀를 ‘키 클리닉’에 보내면

자기 자녀도 따라 보내야 마음이 놓이는 거죠.”(연세대 의대 정신과 김찬형

교수)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와 극단의 목소리가 횡행하는 문화는 개인의 합리적 사고를

방해합니다. 여기에 말초적 대중문화의 영향이 덧칠돼 병적인 외형중시 풍토가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

반면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키는 생활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허 모씨(33 서울 도봉구 방학동)는 “키가 160㎝로 작은

편이지만 연애와 직장생활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는 “고교

때까지 키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후 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에 나의 장점을 살리자고

마음을 바꿨다”며 “내 장점을 볼 줄 아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권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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