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과 무너진 하얀거탑

 

드라마 ‘하얀 거탑’(巨塔)이 막을 내렸어도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일본의 원작 드라마나 대만의 리메이크 물을 보며 종영의 아쉬움을 달래는 이까지 있다고 한다.

드라마를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시청자의 반응을 접하며 의문이 밀려온다. 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일까? 통상의 기준으로 보면 출세에 미친 악인(惡人)일 수도 있는 장준혁의 죽음에 왜 수많은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을까? 드라마에 나온 의사 중 장준혁이 가장 훌륭한 의사인가?

이 드라마가 성공한 여러 요소 중에 의사사회를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치와 술수가 난무하는 조직사회로 설정한 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섬뜩할 정도의 현실감이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장준혁 역시 마찬가지다. 장준혁은 단순히 말해 능력 있고 카리스마 있는 외과의사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윗사람과 후배, 제자들에게 모두 인정받는 의사다. 비록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가난을 이기고, 어느 정도 때 묻고, ‘동물의 왕국’과도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은 어느 조직에나 있다.

드라마에서 장준혁의 유서는 두 가지. 하나는 상고이유서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경환 교수에게 남긴 편지이다. 오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증한 숭고함을 볼 수 있지만, 명백한 의료과실에 대해 끝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고이유서를 함께 준비한 것에서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상고 이유서를 놓고 누리꾼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이것이 바로 불완전한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전형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해석한다. 탤런트 김명민의 완벽한 연기 때문이니 이전에 연기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니…. 모두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고 본다.

필자는 장준혁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투영돼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죽음이라는 커다란 벽에서 그와 슬픔을 함께 나눴다고 본다.

의사도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정치와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때 묻지 않은 길을 가는 의사를 칭송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조직을 살리기 위해 때를 묻히는 것을 비난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반인도 의사라고해서 지고지순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얀 거탑’ 종영 1주 뒤 같은 방송국의 뉴스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무너진 하얀 거탑’에서는 의사들이 일반인과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비칠 때 시청자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보여줬다.

그 뉴스프로그램이 완벽히 진실을 말했다고 100% 믿을 수는 없다. 게다가 왜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일어나는지, 의료사고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지,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사는 모두 나쁜 의사인지에 대해서 성찰이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 나온 의사는 일반인들의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의 의사였다. 그곳의 의사는 환자도 의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발언으로 시청자의 울분을 자아냈다.

의사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심으로 환자들에게 설명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면 대부분의 당사자는 이해한다.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이 소송에 휘말린 것은 진솔한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가 사람의 모습을 보였기에 유족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의사도 ‘사람의 아들’이다.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언제든지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한다. 환자에 치이고, 또 환자를 치유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질 때 의사의 무의식은 환자와 의사세계를 분리하고 의사세계에 몰입하는 ‘도피기제’에 의존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도피기제는 결국 헛된 거탑일 따름이다. 의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자신을 포함한 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늘 되새긴다면, 삶에서 잔잔한 행복감을 더 느끼는 동시에 수많은 트러블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출처 : http://blog.naver.com/sieuh7777/110014498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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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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