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도 성희롱 ‘안전지대’ 아니다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최근 모 대학병원에서 성희롱을 당한 전공의가 업무상 불이익까지 받은 사건이 발생했으나, 병원에서 신속한 조치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2일 모 대학병원 전공의 A씨에 따르면 선배 전공의 B씨는 지난 2018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A씨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A씨는 첫 성추행 시에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조용히 넘겼으나, 지난해 B씨의 집에서 더 심각한 추행을 당한 후 현재는 B씨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A씨는 사건 이후에도 B씨가 지속적으로 위력을 이용해 업무상 불이익을 줬으며 병원측에서도 신속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서 A씨는 “원형탈모 증세 등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이 와 정신약물치료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15년 전공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공의의 33%가 성희롱 피해경험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가해자는 환자가 14.4%이었고, 교수와 상급전공의의 경우 각각 8.1%, 6.5%이어서 환자에 의한 성희롱을 제외하고도 교수에 의한 성희롱의 빈도수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희롱을 당한 경험은 여성 전공의가 남성전공의에 비해 높게 나왔다(54.6% vs. 23.0%). 연차 별로는 인턴 43.2%, 전공의 1년차 34.9%, 2년차 32.8%, 3년차 32.6%, 4년차 31.8%로 연차가 낮을수록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응답자의 13.7%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교수에게 3.6%, 상급전공의 2.1%이었으며 여성수련의가 남성수련의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23.7% vs. 9.6%). 2017년도에 같은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전공의의 28.7%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 중에서 교수에 의한 성희롱이 9.5%, 상급전공의에 의한 성희롱이 6.9%로 조사되었다. 또한 전공의 중에서 10.2%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여 2015년과 유사하였다.

이렇게 대학병원에서 교수나 상급전공의에 의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대학병원에서 교수와 전공의, 상급전공의와 하급전공의의 권력차이 및 아직까지 병원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 때문으로 생각한다. 의과대학은 소위 학번으로 통하는 서열로 규율되고 학습되며 이러한 학번으로 대변되는 권위주의적 서열문화는 대학병원까지 이어진다. 특히 엄격한 도제문화와 위계질서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교수나 상급전공의 말에 순응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위에서 내린 결정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사와 반하더라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른다. 이러한 문화에서 전공의나 하급전공의는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참고 따라야 하는 하급자일 뿐으로 성희롱이나 성추행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위계질서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 의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교수나 상급전공의가 전공의나 하급전공의에게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문화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에서 존댓말은 사람의 위치를 표현해준다. 즉,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은 반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도 연결되어 있다. 교수는 전공의에게, 상급전공의는 하급전공의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이러한 반말사용은 집단의 위계가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으로 교수나 상급전공의들에게 불필요한 우월함을 심어주고 이로 인하여 도가 지나친 행동이 유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셋째, 최근에 줄어들기는 했지만 반강제적인 회식과 접대문화도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대학병원에서 회식은 교수들과 전공의, 전공의와 전공의 사이에 긴장을 풀고 친밀감을 높이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상당수의 회식이 원치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반강제적인 경우가 많아 불참하는 경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회식자리에서 음주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중심적이고 음주에 관대한 문화로 인하여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음주중에 발생한 모든 비이성적이고 범법적인 행위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회식도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술탓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하고 질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적인 문화를 악용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성희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넷째, 병원의 과들은 폐쇄적인 구조로 인하여 전공의가 되면 3-4년간은 같은 과에서 연속적으로 수련을 받아야 하고, 다른 병원으로 수련을 위해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인 교수나 상급전공의와 피해자인 전공의나 하급전공의와 분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상급전공의나 교수가 징계를 받고 돌아오게 되면 하급수련의와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해자인 전공의나 하급전공의가 상급자들에 의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밖에 알리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상급자들에 의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나 상급전공의에 의한 전공의나 하급전공의 성희롱 혹은 성추행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선 현재 대학병원에 만연되어 있는 교수나 상급전공의들이 권위주의적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와 전공의, 상급전공의와 하급전공의 사이에 명령을 하달하기 보다는 좀 더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전공의 연차별 직무를 명확화하여 교수들이나 상급전공의에 의해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없도록 하여 상급자에 의한 수련과정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이 자신의 수련에 문제가 생길 우려를 하지 않고 성희롱이나 성추행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 병원의 수련을 표준화하고 이동수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한 병원에만 있다 보면 병원의 사정과 역량에 따라 볼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 또한 교수나 상급전공의에 의한 왕따 혹은 성희롱이 일어나더라도 이 사실을 신고하기 쉽지 않다. 이동수련은 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도 전공의 폭행과 성희롱 등 비인권적 문제가 발생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성희롱이나 성추행사건은 수련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병원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서 해결해야 한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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