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학술지 NEJM에 논문… 국제학회가 인정한 ‘최고 젊은 의사’

[대한민국 영 닥터] ①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덕우 교수

[사진=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덕우 교수(46)는 ‘용장 밑에 졸장 없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의사다. 그는 세계 최고의 심장내과 의사로 손꼽히는 박승정 교수(65)의 애제자로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기대되는 의사다.

박덕우 교수는 스승과 함께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게 기존의 가슴을 열어 심장판막을 교체하는 수술 대신 허벅지의 대퇴동맥을 통해 인공판막스텐트를 삽입, 노화되고 딱딱해진 판막을 대체하는 타비시술을 개척해왔다. 그는 또 의학자들의 로망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두 편,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지금까지 국제 학술지에 무려 25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환자뿐 아니라 동료 의사, 직원들에게도 ‘열린 의사’로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박 교수는 ‘충분한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주변에 그 어떤 놀라운 일도 절대 생기지 않는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궁둥이가 무거운 학생’이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책상을 떠나지 않고 공부해서 경희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눈앞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었다.

“대치동 학원가, 기숙학원, 외국어고등학교…. 의대는 다 내신 1등급만 오는 줄 알았는데 친구는 5등급이라는 거예요. 어떻게 5등급이 의대를 왔지 싶었는데 외고 출신이래요. 서울에는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었던 거죠. 뭔가 억울했어요.”

예과 2년 내내 방황했다. 공부가 재미없어 책에는 손도 안댔다. 시험기간에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술술술, 술독에 빠져 살았다. 140명 중 128등까지 떨어졌다. 아슬아슬, 유급을 면했다.

“아버지가 제가 의사되기를 정말 바라셨어요. (웃음) 처음에 인문계를 지원했는데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저랑 말을 안 하시더라고요. 결국 자연계로 바꾸고 의대에 진학했는데, 그래서인지 예과 때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 같아요. 의대에 들어는 왔는데 이제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본과에서 막상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자 승부욕이 발동했다. 다시 궁둥이가 의자에 붙을 정도로 공부해 결국 본과 20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처음 상경했던 때를 떠올리며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자!” 심정으로 진취적 이미지가 강한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인턴에 지원했다. 전공의는 이 병원의 최고 인기과였던 내과에 지원했다. 서울대, 연세대 등 명문대 출신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박 교수는 시간을 촘촘하게 쓴다. 지금도 휴대폰 캘린더를 이용해 ‘오늘의 할 일’을 빼곡히 적은 뒤,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로 즐겁게 산다. 심장내과 특성상 응급환자가 발생할 때도 많다. 그런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전날 지우지 못한 리스트의 일들을 마저 해낸다.

“한 번도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이 아니어서 항상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1.5배쯤 시간을 더 투자해 노력했을 뿐인데, 그러고 나니 다들 잘한다고 하더군요.”

박 교수는 응급환자를 시술하고 달려왔지만 인터뷰 내내 지치지도 않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런 활달한 성격은 심장내과를 선택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장내과, 멋있잖아요! (웃음) 내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힘들었어요. 성격은 다이내믹한데 내과는 보통 만성질환을 다루거든요. 성격에 안 맞는 거예요. 아, 내가 과를 잘못 선택했나 했죠. 그런데 심장내과는 달랐습니다.”

심장내과는 내과적 성향과 외과적 성향이 공존하는 과로 불린다. 그런 점이 박 교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는 상태가 바로 좋아지고 곧바로 퇴원해요. 성향에 딱 맞았죠. 응급상황도 많다 보니 ‘쓰리디(3D)과, ‘개인 삶이 없는 힘든 분야’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진료하면서 항상, 매 순간 보람을 느낍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실려 온 환자는 거의 사망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술을 받아요. 죽었다 살아나는 거죠. 그래서 좋아지신 분들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열정적으로 사시더군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참 행복해요. 의사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죠.”

박 교수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과 행정직원들 사이에서도 겸손하기로 소문났다. 평판처럼 박 교수는 그간의 이력과 성과에 대해 모두 주위 사람에게 돌렸다. 특히 스승인 박승정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혼자 이루어낸 게 아닙니다. 센터가 잘 되어 있어서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서울아산병원 심장센터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센터이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커요. 박승정 교수님께서 평생을 바쳐 그 기반을 다져놓으셨습니다. 제 인생의 멘토세요. 앞으로 제가 할 일도 후배들이 항상 1등이라는 생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만큼 제자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2009년 3월부터 2012년 2월 해외연수 전까지 울산대 의대에서 학생 담당 교수직을 맡아 실무교육에 힘썼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울산대 의대 올해의 교수상(임상교육 부분)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병원에서 훌륭한 스승 아래, 좋은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금도 논문 쓰라고 하면 하루 종일 앉아 쓸 수 있어요. 남들보다 머리가 좋진 않아도 지구력이나 끈기는 있는 것 같아요. 일요일 새벽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논문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사진=올해의 젊은 최고 과학자상을 수상한 박덕우 교수(오른쪽에서 2번째)]
그는 2013년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ACC)에서 ‘올해의 탁월한 젊은 과학자상’을 아시아 최초, 세계 최연소로 받았다. 매년 전 세계 심장학자들 가운데 최근 5년간 임상ㆍ기초ㆍ역학분야를 통틀어 업적이 우수한 1명에게만 수여되는 상이다. 그는 또 ‘유한의학상’, ‘분쉬의학상 젊은 의학자상’, ‘아산의학상 젊은 의학자 부문’ 등을 수상했다.

이렇게 연구에 매진하면서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 교수는 아직도 좌절을 느낄 때가 많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환자는 응급 수술이나 스텐트 시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급성심근경색은 돌연사의 주범인 만큼, 치료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아산병원으로 30대 후반 아기 엄마가 실려 왔다. 출산한 지 넉 달이 채 안 된 이 여성은 협심증으로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환자 나이도 젊고 하니, 시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허나, 시술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쇼크가 왔다. 바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일주일이 안 돼 숨졌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다. 30대 협심증 환자도 흔치 않은데 이보다 더 심한 증세여도, 나이가 많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아기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갔다는 남편의 말이 잊혀 지지 않아요. 아직도 마음이 저릿해요.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일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아픔은 심장내과를 선택한 이상 짊어져야 할 업보,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연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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