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칼럼] 그 당당하고 우렁찬 수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 주재료인 닭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삼은 달고 씁쓰레한 맛을 낸다. 향이 강한 재료이므로 닭과 섞으면 인삼이 이긴다. 내 생각에는 인삼보다는 황기가 닭과 더 잘 어울린다. 100일 정도 키운 토종닭에 황기 서너 뿌리 넣고 푹 고면 닭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에서>

그렇다. 계삼탕(鷄蔘湯·Chicken Ginseng Soup)은 결국 무슨 닭을 쓰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값비싼 산삼을 넣으면 뭐하나. 닭이 엉터리라면 ‘말짱 황’이다. 옻 엄나무 영지버섯 등 별별 것을 다 넣어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계삼탕의 닭은 보통 500g 정도 되는 영계를 쓴다. 머리와 꼬리 내장을 빼면 한 350g 정도나 될까? 그 빈 뱃속에 밤, 인삼, 대추, 마늘, 생강, 황기, 오가피, 은행, 불린 찹쌀 따위를 넣고 푹 곤다.

어릴 적, 한겨울 우리 집 아랫목은 늘 병아리들 차지였다. 식구들은 윗목에서 생활했다. 형제들은 “삐약~ 삐약~” 들끓는 소리에 눈을 떴다가, 그 소리가 잠잠해지면 설핏 잠이 들었다. 병아리는 구물구물 1000마리가 넘었다. 방바닥은 잦은 군불로 윗목까지 펄펄 끓었다.

따뜻한 3월이 되면 병아리 등엔 날개가 삐죽삐죽 돋았다. 우는 소리도 제법 우렁차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약한 것들은 이미 죽고, 700~800마리 정도 남았다.

한낮엔 봄볕마당에 풀어놓아야 했다. 둘레엔 빙 둘러 임시 가림막을 쳤다. 병아리들은 천방지축 마당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울뚝불뚝 힘이 넘쳤다. 수평아리들은 벌써부터 서로 깃을 세우고 부리로 쪼아대며 싸웠다. 식구들은 하늘의 솔개가 이 어린 것들을 채가지 않을까 간을 졸였다.

4월이면 그것들은 시장에서 약병아리로 팔려나갔다. 속이 짠했다. 구물구물 크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머니가 몇 마리를 잡아 옻이나 엄나무 백숙을 해줘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겨울밤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그 녀석들에게 쌀겨와 싸라기모이를 주던 일이 떠올랐다.

요즘 병아리는 부화기계에서 ‘생산’된다. 어미 닭의 따뜻한 품은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전설로 남았다. 생산된 병아리도 수컷만 살아남는다. 암평아리들은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한다. 살아난 수평아리라고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우선 발톱이 뽑힌다. 그리고 뾰족한 부리도 뭉툭하게 잘린다. 철망으로 된 아파트양계장에 맞추는 것이다. 발톱이 있으면 철망에 걸린다. 철망의 병아리들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결국 견디다 못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하지만 뭉툭한 부리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허공에 내지르는 주먹질이나 같다. 병아리들은 처음 2주 동안 24시간 내내 인공조명 아래 산다. 그러면서 인공사료를 먹고 또 먹는다. 항생제도 먹고 성장촉진제도 먹는다. 살이 피둥피둥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렇다. 옛날 시골 약병아리는 겨우내 서너 달은 키워야 500g 정도가 됐다. 하지만 요즘 일부 닭 공장에선 빠르면 20일만에도 뚝딱 만들어낸다. 한 달이면 시간이 철철 남아돈다. 이런 닭을 넣은 삼계탕은 15분 이상 끓이면 흐물흐물 다 녹아버린다. 고기도 퍽퍽하고, 마치 푸석한 두부를 먹는 것 같다. 국물은 깊은 맛이 없고 느끼하다. 뼛속은 텅 비어 ‘골 즙’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뼈는 과자처럼 바스라진다.

좋은 약병아리는 적어도 센 불에 1시간이상 끓여야 한다. 그래도 육질이 쫄깃하다.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며, 뼈 즙이 우러나와 고소하다. 뼈를 분질러보면 속에 새카만 골수가 꽉 차있다. 뼈도 바스러지지 않고 대쪽처럼 날카롭게 갈라진다. 수평아리는 기름이 적어, 암평아리보다 육질이 맛있다. 서울중구 서소문 고려삼계탕이나 서울지하철 경복궁역 부근의 토속촌 등에서 수평아리(웅추·雄雛)만 고집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요즘 서울시내 내로라하는 계삼탕집에선 대부분 49일정도 키운 수평아리(웅추·雄雛)를 쓴다. 기름이 적고 씹는 맛이 있다. 덩치도 암평아리보다 크다. 옛날에도 계삼탕에 수평아리를 썼지만, 그땐 암평아리를 ‘씨암탉 감’으로 따로 골라 모셔놓느라 그런 것이다. 보통 오래된 계삼탕전문점에선 생산 농가와 직거래를 하거나 아예 직영농장에서 닭을 키운다.

일본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명동 백제삼계탕, 서울강남 관세청 사거리의 논현삼계탕,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 뒤쪽의 장안삼계탕, 들깨삼계탕으로 이름난 영등포 신길동의 호수삼계탕, 서울성곽길 성북동의 성너머집, 여의도 파낙스 등이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 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개 하고나니

골수 녹아내려 녹작지근한 몸뚱어리

인삼 하나 끌어안고

볼썽 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

누드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

-<권오범의 ‘삼계탕’ 부분>

요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선 ‘무항생제 토종닭’이 화두다. 저마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무공해 닭’을 선보이려 애쓴다. 과연 어느 것이 토종닭인가. 역시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봄직하다.

“120일 넘는 토종 계삼탕은 적어도 센 불에 1시간10분은 푹 고아야 한다. 조선 닭은 발과 발목이 모두 녹두 빛이다. 등과 머리가 이루는 각이 90도로 곧다. 벼슬도 한여름 맨드라미처럼 선명하고 팥죽처럼 짙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보기만 해도 예쁘다. 이것들은 야생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적어도 반쯤은 방목으로 키워야 한다. 공장에서 나온 닭들은 항생제 덩어리다.”

한방에서 닭은 따뜻한 성질을 지닌 식품이다. 반대로 오리는 찬 성질을 갖고 있다. 따뜻한 닭에 인삼 황기 마늘 대추 등을 넣고 끓이면 더 뜨거운 식품이 된다. 옻나무나 호박 등을 넣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인 것이다.

닭고기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많다. 칼로리가 낮은 대신 영양가가 높다. 흔히 닭똥집이라고 불리는 모래주머니는 근육질로 단백질이 대부분이다. 연탄불에 구워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오도독거리며 씹는 맛이 좋다. 닭발은 양념고추장에 버무려 연탄불에 구워먹었다. 눈 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화장지로 닭발을 둘둘 감아들고 소주 안주로 먹었다. 유독 닭 껍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닭 껍질엔 콜레스테롤이 많다.

닭 가슴살은 단백질 덩어리이다. 보디빌더나 마라토너들이 즐겨 먹는다. 맛소금에 찍어 먹는다. 소화가 잘돼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좋다. 남도에선 닭을 육회로도 먹는다. 대부분 안심살을 먹는데, 그것은 가슴살보다 더 안쪽에 붙어있다. 닭 육회는 소고기 육회처럼 양념을 해서 먹거나 그대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날 비린내와 함께 물렁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삼계탕은 대한민국 최고 요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중국 장이머우 영화감독은 한국에 오면 ‘진셍 치킨 수프’만 찾는다. 중국 영화배우 장쯔이도 서울에 오면 삼계탕부터 먼저 찾는다.

삼계탕은 무더운 복날음식이다. 허기지고 힘이 없을 때 먹는 복달임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힘을 추스른다. 남자들은 수평아리의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한다. 아득히 먼 옛날, 창공을 훨훨 날았던 ‘지워진 기억’을 되살려낸다.

‘수탉 한번 큰 울음에 천하가 밝는구나.’ 중국 이하시인(790~816)의 찬탄이다. 어디 천하만 밝는가? 온갖 귀신들도 스르르 꽁무니를 뺀다. 수탉은 당당하다. 닭 벼슬은 선비들의 출세를 상징한다. 날카로운 닭 발톱은 무인들의 용맹을 뜻한다. 요즘엔 수탉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보는 수탉도 요즘 남자들처럼 힘이 없다.

수탉은 왜 홰를 탁탁 치면서 우는가? 그것은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기 위한 비상의 꿈이다. 이륙을 위한 몸부림이다. 수탉은 왜 자꾸 볏을 흔드는가? 그것은 ‘그른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다’라는 의지의 표시이다.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문정희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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