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 경고그림 어디에? 규개위 “담배회사 맘대로”

 

“경고(그림) 위치를 담배회사에 맡기라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중략) 제발 경고그림 위치를 (담뱃갑) 상단에 넣어주세요.”(규제개혁 신문고 중)

“이번에는 꼭 제대로 시행해주시길 정말 바랍니다. 이제 바뀌어야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흡연자 정말 괴롭습니다.”(규제개혁 신문고 중)

어렵사리 추진된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에 대해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가 어깃장을 제대로 놓았다. 지난 달 열린 규제심사 회의에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 중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붙이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해 규개위가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의 신문고에는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담뱃갑 경고그림은 전 세계 80개국에서 시행 중이며, 연내 우리나라를 포함해 최소 101개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장 효과적인 비가격규제정책으로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캐나다 연구를 보면 흡연자가 될 확률을 12.5%, 매일 흡연자가 될 확률을 3.2% 감소시키는 반면, 금연 시도 확률을 33% 증가시켰다. 각국 연구에서도 청소년 흡연예방과 흡연자의 금연유도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경고그림을 도입하는 데 따른 비용 편익 역시 매우 높다. WHO의 2009년 자료를 보면 흡연자 수 감소와 흡연율 감소, 담배사용 감소 등에 따라 연간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4조원까지 순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규개위의 이번 권고안이 받아들여지면 담뱃갑의 경고그림 위치는 담배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된다. 자연 담배 진열대에서 가격표에 가려 경고그림이 보이지 않도록 담배회사들이 담뱃갑 하단에 경고그림을 넣을 게 자명해진다. 이러면 구매 전 노출에 따른 경고그림의 금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규개위는 경고그림의 담뱃갑 상단 표시에 따른 사회적 비용 효과의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는 “(담뱃갑의) 30%라는 적은 면적의 경고그림을 담뱃갑 하단에 배치하면 진열장과 가격표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돼 흡연자가 담배를 구매하고자 하는 의향을 감소시키고, 청소년이 담배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경고그림의 효과를 방해해 국민건강증진법의 취지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규개위의 이중적인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따라 담뱃값 인상에는 찬성해놓고, 경고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표시하도록 한 FCTC의 가이드라인은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FCTC를 비준하고, 2013~2014년에 의장국을 지낸 우리나라는 비준한 지 3년 이내 FCTC 규약을 국내법으로 이행해야 함에도 11년만에야 경고그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규제심사 회의석에서는 경고그림이 담배 판매업소 종업원에게 심한 혐오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져 규개위가 여론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성인 1200명과 청소년 690명 등 총 1890명을 상대로 지난 3월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보면 주제별 외국그림보다 혐오감 점수가 높게 나온 국내 경고그림은 없었고, 오히려 평균 약 0.39점 낮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한국형 경고그림은 면적이 담뱃갑의 30%에 불과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라며 “노출 면적이 작은 만큼 혐오감 강도는 오히려 외국보다 높아야 한다고 볼 때,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담배회사 사외이사, 담배회사의 담배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인사들이 규개위 민간위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눈총을 사고 있다. 당초 담뱃갑 앞뒤 상단에 경고그림을 부착하려한 복지부가 규개위에 즉각 재심사를 요청해 오는 13일 관련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경고그림(30%)과 경고문구(20%)를 더한 크기는 담뱃갑 면적의 절반에 해당된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말까지 한국형 경고그림을 최종결정해 고시한 뒤 올해 12월 23일부터 반출되는 담뱃갑에 고시된 경고그림을 부착할 예정이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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