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척 남의 말 전달하면 상대가 눈치 챌까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역시 아이답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약 어른이 아바타가 돼 아이의 생각을 대신 전달한다면 어떨까. 아이의 생각이 어른의 입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을까? 최근 사회심리학자들이 이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 박사(전 하버드대 교수)는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육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시라노이드(Cyranoid)’라고 불렀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시라노라는 인물이 잘생긴 친구 크리스티앙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사랑하는 여인 록산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을 담은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비롯된 명명이다.

밀그램의 시라노이드 개념이 최근 영국 연구팀에 의해 부활했다. 연구팀은 이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평균연령이 30세인 22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26세의 한 남성과 10분간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실험참가여성들은 이 남성 역시 실험참가자 중 한 명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연구팀이 미리 심어놓은 연기자다.

이 남성은 실험참가여성의 절반과 대화를 나눌 때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하지만 남은 절반의 여성들과 대화를 할 때는 시라노이드가 됐다. 다른 방에 숨어있는 23세의 여성이 하는 말을 무선 이어폰을 통해 듣고 전달하는 아바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대화가 끝난 뒤 연구팀은 실험참가여성들에게 남성과의 대화가 어땠는지 물었다. 남성이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대본을 외워 답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것이다. 그 결과, 실험참가여성들은 이 남성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실험참가자들이 37세 청년 혹은 12살 소년과 대화를 나눴다. 실험참가자들은 이 두 남성에게 과학, 문학, 역사, 최근 일어난 사건 등에 대해 물었다. 청년과 소년은 앞선 실험과 마찬가지로 연구팀이 심어놓은 연기자다. 그리고 실험참가자 절반과 대화를 나눌 때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답했고, 나머지 절반과 대화할 때는 시라노이드가 됐다.

청년은 소년의 생각을 자신의 입을 통해 전달했고, 소년은 반대로 청년의 말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청년과 소년의 나이차가 큼에도 불구하고 실험참가여성들은 이 남성들이 시라노이드였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평가에는 차이가 있었다. 실험참가자들은 청년과 소년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성격과 지능에 모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남성이 소년의 생각을 대신 전달할 때는 나쁜 점수를 줬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을 통해 시라노이드 이론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으며 외모가 미치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사회심리학저널(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실렸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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