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지는 생명… 영국에서 배우자

 

“우리나라도 보험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항암제는 영국 시스템을 응용하면 환자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습니다.”

항암제로 생명을 연장해 나가야 하는 암 환자들이 보험 적용이 안 된 비싼 약값 탓에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건강보험 재정 외의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환자들의 항암제 복용을 도와주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영국처럼 항암제기금(Cancer Drug Fund, CDF)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사진)는 “항암제를 먹지 않으면 당장 생명이 위급해지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비급여 항암제는 한 달에 500만~1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약”이라며 “빚까지 내서 약을 먹으면서 보험이 적용되기를 학수고대하지만 기다리던 중 사망하기 일쑤”라고 했다.

이어 “약이 시판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한 다음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약값 협상과 보건복지부의 고시까지 나야 된다”고 했다. 안 대표는 “그러려면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약값 협상이 결렬되면 또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제약사의 지루한 줄다리기 싸움으로 애꿎은 환자만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한 달 약값이 1000만원에 이르는 말기 폐암 치료제인 젤코리가 영국에서 보험 처리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국 폐암 환자들은 젤코리를 잘 복용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영국 항암제 기금(CDF) 덕분이었다. 기금 지원을 받아 환자들의 약값 부담이 크게 준 것이다.

안 대표는 “건강보험료도 내고 세금도 잘 내는 환자들이 약값 협상 결렬 때문에 약을 못 먹는 입장에 처해 있다”면서 “건강보험 협상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영국처럼 기금을 통해 약을 먹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은 지난 2010년 보수당 정권 공약으로 CDF를 추진해 건강보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표적항암제에 대한 약값을 지원하고 있다. 대상약제 리스트를 만들어 2014년 5월 기준 총 41개 약제와 79가지 적응증이 등재됐다. 2012년 기준 지원 환자 수만 1만3000명에 이른다. 이 정도 환자수면 우리나라에서는 신약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암 환자들을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안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표적항암제를 통한 생명연장 기간은 평균 9개월이다. 일부에서는 삶이 얼마 안 남은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돈을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모진 말도 한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과거에는 말기 암환자들이 병원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표적항암제는 경구용 약제이기 때문에 하루에 한두 번만 먹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수명이 연장되지만 그 시간동안 집에서 가족들과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금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영국 CDF는 전액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제약사가 분담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예산 배정이라는 것이 환자단체연합회의 주장이다. 안 대표는 “민간에서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영국 CDF도 기금을 시작할 때 민간에서 재원을 충당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신약을 개발하는 글로벌 제약사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국고는 기획재정부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도 비싼 약값과 수요 증가로 기금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환자의 생명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오히려 기금을 늘리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우리도 삶이 위태로운 환자를 살리는 데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험분담제의 도입으로 제약사가 공단에 돌려줘야 하는 환급액이나 규모를 줄이고 있는 의료사업에서 재원을 충당해 항암기금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와 같은 재원 조성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구상한 뒤 정부에 적극 제안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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