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에 대한 분노보다 아름다운 패배자에 박수를

 

런던올림픽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영욕의 드라마가 롤러코스터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펜싱 여자 샤브르 종목에서 김지연이 개막식 때 미국 대표 팀의 기수를 맡았던 전설적 검객 제그니스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데 이어 러시아의 베리카야를 무찌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감동과 환호, 탄식의 목소리 사이에 오심과 편파판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집니다. 남자수영 자유형 400m 예선의 박태환 실격 소동에서부터 여자펜싱 개인 에페 준결승전에서 신아람의 ‘흐르지 않는 1초’ 파문, 남자유도 66kg 이하급 준결승전에서 조준호의 판정번복에 따른 탈락….

누리꾼들이 들끓고 있고 일부 언론은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는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장이 신아람이 3, 4위전에 나가도록 권유했다고, 조준호의 판정번복에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며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신아람이 국제편싱협회의 특별상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렇게 분노할 일만은 아닐 겁니다. 스포츠의 세계는 승리를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경기에 임해야 하고 그 열매는 대체로 흘린 땀과 비례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년 피땀을 흘렸어도 한순간의 날씨 때문에, 예기치 못한 부상 때문에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오심 때문에 피땀 어린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그래도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삶의 결과가 노력과 100%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고, 이처럼 스포츠가 삶의 전쟁터와 닮았기 때문에 인류가 열광하는 것 아닐까요?

올림픽강령은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아람도 결국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인류가 값진 노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삶과 마찬가지로 진행형입니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 더 큰 영광을 위한 거름이 될 수도 있고, 거꾸로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굴레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 유도 남자 90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송대남은 숱한 불운으로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하다가 34세의 나이에 처음 진출한 올림픽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가 실패의 그림자 속에 있을 때 좌절했다면 지금의 영광이 가능할까요?

언론과 포털은 현재의 승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포츠계는 스포츠맨십을 장려하면서 승리에만 집착하는 ‘게임스맨십(Gamesmanship)’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남자 유도 81kg 이하 급을 볼까요? 우리는 김재범의 인간승리를 손뼉 치며 축하합니다. 그는 한쪽 몸이 불구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를 악물고 연습해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왼쪽 어깨, 왼쪽 무릎, 왼손 모두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외팔이 검객’처럼 오른팔과 오른다리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4년 전에 죽기 살기로 해서 은메달, 이번에는 죽기로 해서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습니다. 4년 전에 죽기 살기로 해도 결국 막판에 패배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 이번에 금빛 과실을 딴 것이지요. 더구나 결승전에서 김재범에게 졌던 독일의 비쇼프는 4년 전 그에게 눈물을 안겨줬던 당사자였습니다.

눈시울이 찡하게 아름다웠던 장면은 패자인 비쇼프가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눈물을 흘리는 김재범을 안고 감동의 눈물을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맨십이 아닐까요? 혹시 4년 전 유도 경기장 기억나십니까? 남자 유도 60㎏급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흐느끼는 최민호를 일으켜 세우고 손을 번쩍 들어준 오스트리아 선수 루트비히 파이셔의 모습을.

스포츠의 세계는 억울한 것을 감내하는 세계입니다. 또 최선을 다한 패배가 부끄럽지 않은 세계입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승리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울 수만은 없습니다. 그저께 대한민국 언론은 중국 배드민턴 선수들의 ‘꼼수’를 비판했습니다. 여자복식 조별리그에서 중국 팀이 세계1위인 동료를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지자 맹비난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배드민턴협회는 중국 팀과 경기를 한 우리 팀도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고, 다음 경기에서 인도네시아 팀과 맞붙은 우리 팀도 ‘이기기 경기’가 아니라 ‘지는 경기’를 했다고 판단해서 두 경기의 선수 모두를 실격 처리했습니다. 중국 팀이 ‘꼼수’를 부린다고 ‘꼼수’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다면 비록 금메달을 놓쳐도 ‘스포츠맨십의 승리’였을 겁니다.

선수들이나 누리꾼이나 스포츠맨십이 아니라 게임스맨십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승자 독식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해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면 막대한 연금을 받지만 ‘아름다운 패배자’는 곧 잊혀져버립니다.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패배자’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벤처기업을 하다가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박수를 치는데, 한국에서는 패배자, 낙오자가 됩니다.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부터 스포츠맨십을 가르치지 않고 ‘1등’ ‘승리’만 요구합니다. 스포츠맨십은커녕 스포츠조차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스포츠를 통해 성숙해지면 좋겠습니다. 승패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아름다운 승리를 축하하고, 최선을 다한 패배에도 박수를 보냈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게임스맨십이 넘치던 자리에 스포츠맨십이 채워지기를 빕니다. 승패를 떠나면 스포츠 경기의 숨은 부분도 잘 보이고,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패배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스포츠맨십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경기와 삶에서의 스포츠맨십

①매사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실전’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환경 탓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8등, 10등도 최선을 다했다면 충분히 아름답다.
②경기 규칙과 심판의 판정을 존중한다.
-심판의 오심은 대부분 삶에서 닥친 예기치 않은 불운과도 같다. 그러나 삶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불운을 탓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서 나중에 더 큰 성취를 하는 것이다.
③사회적 예의를 지켜야 한다. 승자도, 패자도 서로 악수를 하고 상대편의 뛰어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2등을 무시하는 1등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④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했지만 불운에 빠진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
⑤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장비를 빌려줘야 하고 상대방의 부상을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경주 최 부자’는 흉년에 남의 땅을 가로채지 말라는 가훈을 갖고 있다.
⑥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킨다. 승리자가 패배자를 깔봐서는 안 되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만 경기를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경영을 한다면, 결국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것.

<제 293호 건강편지 ‘스포츠 정신’ 참조>

오늘의 음악

‘스포츠맨십’을 따르는 삶은 이악스런 눈으로 보면 바보 같은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삶이 결국 성공한다고, 적어도 행복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영화로 만든 ‘포레스트 검프’의 주제가 ‘Running On Empty’를 영화 화면과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폴 매카트니의 ‘Hey Jude’가 잘못 연결됐습니다. 이번에는 잘 들려드리겠습니다. ELO의 ‘Last Train to London’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곡은 1921년 오늘 세상을 떠난 엔리코 카루소의 절창, ‘무정한 마음’입니다.

♫ 포레스트 검프 OST [잭슨 브라운] [듣기]
♫ Hey Jude [폴 매카트니] [듣기]
♫ Last Train to London [ELO] [듣기]
♫ 무정한 마음 [엔리코 카루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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