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는 세계사가 녹아 있다

[이성주의 건강편지]가나 속의 세르비아

축구에는 세계사가 녹아 있다

아쉽고도 자랑스럽고, 그래도 또 안타까운 16강전이었습니다. 이제 축구 팬들은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대신 세계 축구를 즐기며 아쉬움을 달래야 할 듯합니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통한의 석패를 당한지 몇 시간 뒤 가나는 미국을 21로 이겼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나의 감독 밀로반 라예비치 만큼 운명의 시험을 받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라예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입니다. 세르비아는 D조에서 12패로 탈락했지만 한때 16강 진출이 당연시된 팀입니다. 박지성의 소속 팀 맨U의 비디치가 버티는 막강한 수비력으로 유럽지역 예선 G 1위로 예선을 통과했고 그 수비력으로 D조 예선리그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10으로 격파했지요. 라예비치는 같은 조에 속한 조국 세르비아를 탈락시키고 가나를 16, 8강까지 올려놓았으니 속마음은 어떨까요?


많은 사람이 월드컵을 보면서 국가 때문에 헷갈린다고 합니다.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은 옛 교과서에는 이름이 없는 국가이니까요.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이죠. 우리나라에서 체크공화국을 ‘체코’라고 표기하는데 중간의 ‘O’가 ‘그리고’이고, 따라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체크와 슬로바키아의 나라’라는 뜻이므로 따로 부를 때에는 ‘체크’라고 해야 옳다는 것은 언젠가 말씀드렸죠?


세르비아와 C 3위 슬로베니아는 모두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던 나라입니다. 유럽 지역예선에서 보스니아가 플레이오프에서 포르투갈에게 아깝게 패해 탈락했으므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 3위였던 크로아티아 등 옛 유고연방 국가의 축구실력을 모두 합치면 엄청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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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오늘(6 28)은 세르비아가 세계사에서 사고를 친 날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 국수주의자가 황태자 부부에게 권총을 당겼지요. 아시다시피 이 사건이 세계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됐고요.


이날 숨진 황태자비인 조피(오른쪽 사진)는 황후 시시(위 사진) 만큼이나 비운의 여성이었습니다.


시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법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 자녀의 양육권을 시어머니에게 빼앗긴 채 유럽 각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시시가 낳은 황태자 루돌프가 연인과 동반 자살하자 조카인 페르디난트가 황위를 물려받았는데 그는 황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족인 이사벨라의 시녀였던 조피와 결혼합니다.

조피는 황실 모임에서 남편과 함께 자리를 함께 못하는 천대를 받습니다. 황실의 마차에도 남편과 함께 못 탔지요. 결혼 14돌을 맞아 사라예보에서 남편과 함께 처음 탄 승용차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습니다. 부부는 숨져가면서도 서로의 생명을 걱정했지요. 황실 법도에 따라 죽어서도 함께 묻히지 못할 운명이었지만, 황제의 제안으로 황실 묘지 대신 지방의 성에 함께 묻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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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계대전 후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왕국을 이뤘고 곧이어 ‘남부 슬라브 민족의 땅’이라는 뜻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세워지는 데 주축이 됩니다. 1990년대에는 연방에 균열이 생겨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가 독립했고, 이어서 보스니아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참혹한 내전을 겪습니다. 2006년에는 몬테니그로가 독립을 하고 현재 코소보가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지요.


최고의 스타 마이클 에시엔(첼시FC)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해 아프리카 팀 중에서 16강 통과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점쳐졌던 가나가 8강에 오른 데에는 세르비아 출신의 감독 라예비치의 공이 컸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보스니아, 코스보 등의 국민은 세르비아 출신의 영웅이 달갑지 않겠지요?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으면 축구는 ‘대리전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류사의 모범’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면 인류의 박수를 받을 텐데, 어쩔 수가 없지요. 가족과 함께 세계사를 얘기하면서 축구의 진미를 즐기시면 석패의 아픔과 허탈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축구에 녹아있는 민족사

축구는 민족성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국력과 외국 출신 지도자에 따라 팀의 색깔이 바뀌고 세계 축구가 서로의 장점을 반영하면서 변하고 있지만 기본 색깔은 있는 듯합니다. 제가 정리한 각국의 특징, 그럴싸한지 봐주세요. 가족끼리 이런 점에 대해서도 대화하면서 축구를 즐기면 어떨까요?


○브라질=흥겨운 삼바 축구. 최근에는 조직력이 강화됐지만.

○아르헨티나=화려하고 격렬한 축구

○독일=전차 군단. 단순하지만 승리를 쟁취하는 강한 축구

○스페인=정열적이고 화려한 축구

○영국=선이 굵고 빠른 축구

○네덜란드=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토탈사커

○프랑스=아트 축구. 비록 이번에는 실패한 추상화로 끝났지만.

○대한민국=도덕적 축구.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해서 뛰고 야비한 플레이를 못한다. 자칫 주눅 들기 쉬운 것이 가장 큰 약점.
○일본=역할 분배에 충실한 세밀한 축구

오늘의 음악

오늘은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의 세레나데 3곡을 준비했습니다. 세레나데는 ‘저녁음악’이라는 뜻으로 무겁지 않은 편안한 음악들이죠.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동생 줄리안 로이드 웨버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칼 뵘이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소야곡 제4악장, 피나 카르미렐리가 연주하는 하이든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시라는 의미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주페의 경기병 서곡을 듣겠습니다.

♫ 세레나데 [슈베르트] [듣기]
♫ 소야곡 4악장 [모차르트] [듣기]
♫ 안단테 칸타빌레 [하이든] [듣기]
♫ 경기병 서곡 [주페]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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