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도 술 때문에 쓰러졌다

[이성주의 건강편지]베토벤 바이러스

악성도 술 때문에 쓰러졌다

1827년 오늘(3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의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우레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침대에서 혼수상태에 있던 루트비히 반 베토벤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하늘을 향해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맥없이 픽 쓰러졌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줄어들더니 곧 멈췄습니다. 악성(樂聖)은 57세의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베토벤의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비소중독, 납중독, 매독 등이 언급됩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납중독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2000년 미국 시카고의 과학자들이 머리카락의 DNA를 분석한 결과와 2005년 미국 아르곤연구소가 두개골의 파편을 분석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들 검사에서 비소는 거의 없었고 당시 매독의 치료제로 쓰이던 수은 역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내퍼빌 연구소의 윌리럼 월시 박사는 “당시 베토벤이 사랑했던 악기 ‘유리하모니카’ 때문에 납에 중독된 듯하다”고, 2007년 오스트리아의 법의학자 크리스티앙 라이터 박사는 “간경변증의 잘못된 치료로 배를 뚫다가 납에 중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외형적 사인은 납 중독이겠지만, 실질적 사인은 알코올로 인한 간경변증이라는 주장이 강합니다.

베토벤은 식사 때마다 와인 1병씩을 마셨으며 소화불량과 만성설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설사는 과민성대장염 탓일 가능성이 큽니다. 51세 때 황달이 시작됐고, 교향곡 9번 ‘합창’을 완성한 다음해인 55세 때 코피를 쏟고 피를 토했다고 합니다. 식도정맥이 높은 압력 때문에 터진 ‘식도정맥류’ 탓일 겁니다. 그는 이듬해 복수가 차서 바늘을 찔러 물을 빼는 ‘천자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때 납이 다량 인체에 흡수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1827년 3월 4일부터 간성혼수가 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침대 옆의 노트에 ‘친구여! 갈채를, 희극은 끝났다’고 쓰고 다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그의 시신을 부검했더니 간은 절반으로 쪼그라져 가죽처럼 굳어있었고 이자는 크고 딱딱해져 있었습니다. 술 때문에 만성췌장염까지 온 것이죠.

베토벤은 20대까지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알코올중독에 빠진 것에는 어릴 적의 경험이 큰몫을 차지합니다. 궁중악단의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 월급의 태반을 술값에 썼습니다. 그는 저녁 문뱃내를 풍기면서 귀가해 아들을 구타하며 피아노를 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신동’으로 키워 큰돈을 벌 요량으로 베토벤을 빈의 모차르트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베토벤처럼 어릴 적에 부모의 음주습관에 노출된 사람은 나중에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 쉽습니다.

요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술에 죄를 돌리고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저는 그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술에 대한 관용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 광고는 금지하면서도 술 광고는 넘치는 사회, 술 많이 마시는 것은 칭찬하면서도 과음 후 잘못에는 엄격한 사회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음주 자체를 다시 봐야 합니다.

와인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해도, 막걸리가 아무리 좋다 해도 과음한다면 안 마시는 것보다 못합니다. 베토벤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면, 혹시 교향곡 10번을 감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베토벤이 영원히 눈을 감은 오늘.

술을 끊으면 좋은 점 10가지

①‘몸망침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술, 담배, 스트레스, 운동부족은 서로가 서로를 부른다. 술을 끊으면 나머지도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흡연자는 담배를 완전히 끊기 쉬워진다.

②24시간이 길어지고 삶이 풍부해진다. 애주가들은 “술을 안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지만 술 마실 시간에 음악, 미술, 서예, 독서, 운동 등을 하면 오히려 단조로웠던 삶이 재미있어진다.

③돈을 아낄 수 있다. 술값 뿐 아니라 이로 인한 각종 부대비용, 사고 수습비용을 줄일 수 있다.

④판단력이 좋아져서 업무성과가 좋아진다. 명정한 정신에서 일을 보면 업무 효율이 쑥쑥 올라간다. 선진국에서는 조직의 리더가 절대 취해서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술을 안마시면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대부분 자기합리화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금주에 성공한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⑤가정을 회복할 수 있고 부부관계가 좋아진다.

⑥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술꾼들은 스트레스나 골칫거리가 생기면 술로 푼다. 결국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 데 돌리기 십상이다.

⑦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술로 인한 실수가 줄어들면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⑧사회가 깨끗해진다. 불륜, 향응 등은 대부분 술자리와 연관돼 있다.

⑨신체의 병 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장애 등 마음의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술은 우울증과 자살의 주요원인이기도 하다. 치매 발병률도 뚝 떨어진다.

⑩진짜 친구를 찾을 수 있다. 술을 끊으면 ‘술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고 진짜 의리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남는다.

오늘의 음악

날이 날인 만큼 베토벤의 음악 몇 곡을 준비했습니다. 보리스 블라허와 베를린 필의 협연으로 바이올린 로망스 2번, 빌렘흠 켐프의 연주로 월광소나타 3악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로 전원교향곡 1악장, 토스카니니의 NBC오케스트라 연주로 운명 1악장을 듣겠습니다.

♫ 바이올린 로망스 2번 [베토벤] [듣기]
♫ 월광소나타 3악장 [베토벤] [듣기]
♫ 전원교향곡 1악장 [베토벤] [듣기]
♫ 운명교향곡 1악장 [베토벤]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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