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울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라

[이성주의 건강편지]슈바이처의 행복

고통스러울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라

1875년 오늘, 하늘은 또 한 분의 성인을 내려주셨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늘 영토분쟁을 벌여왔던 알자스 북쪽 카이저스베르크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는 20대에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라는 저서로 유럽 전역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신학자였으며 바흐 해석에 탁월한 오르간 주자이자 음악이론가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는 30세 때 아프리카 원주민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잘 나가던 교수가 미지의 영역에 학생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8년 뒤 지금의 가봉공화국이 있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로 향합니다.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남편을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는 닭장에서 온 군데에서 밀려오는 환자를 즐겁게 치료했습니다. 1년 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많은 평화주의자들이 유럽으로 돌아와 반전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반전시위보다 값진 것”이라며 묵묵히 의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기도 했고 전쟁 뒤에는 ‘포로 아닌 포로’로 프랑스에 잡혀 가기도 합니다.

슈바이처는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병원을 짓고 한센병 환자 거주지도 마련합니다.
그러면서도 신학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아 《사도 바울의 신비》(1930)를 출판했으며 아내와 함께 바흐의 작품에 대한 평론도 계속 내놓았다고 합니다.

슈바이처는 1952년 노벨상을 받았지만, 노벨상이 없어도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는 늘 신음하는 환자와 함께 하면서 이런 통찰을 얻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에는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라.”

슈바이처 박사 밑줄 긋기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 것인가?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다.)
○“비관론자는 빨간 신호등만 보고 낙관론자는 녹색신호등만 본다. 그러나 정말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사색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 가운데에서 인간의 진리가 발견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의 꿈이말로 이 세상의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부(富)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자신 속에 빛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행복은 건강은 좋고 기억력은 나쁜 것에 다름 아니다.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그대들 중 참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섬기는 길을 찾아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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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악

1900년 오늘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 처음 막을 올린 날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세 곡을 준비했습니다. 어제 내한공연을 가진 프라시도 도밍고가 “별은 빛나건만”을 노래하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오묘한 조화”를 부릅니다. 마지막은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별은 빛나건만 [프라시도 도밍고] [듣기]
♫ 오묘한 조화 [루치아노 파바로티] [듣기]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마리아 칼라스]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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