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이 질 때 떠오르는 문호

[이성주의 건강편지]도스토예프스키의 시간

은행잎이 질 때 떠오르는 문호

건강편지를 쓰느라, 또는 코메디닷컴의 경영노트를 쓰느라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잦습니다.
아무리 ‘은행털이범’을 절도죄로 잡아도, 새벽잠 없는 어르신들은 열심히 은빛 살구나무, 즉 은행(銀杏)을 털더군요.

일부 ‘똑똑한 식물학자’는 서울에 은행이 너무 많다며 다른 나무를 심자고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서울의 가을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은 서울만의 멋 아닐까요? 새 길이라면 모를까, 굳이 멀쩡한 은행을 뽑을 필요가 있을까요?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곽재구의 ‘은행나무’에서>

이 시에서 늙은 러시아 문호(文豪)는 도스토예프스키죠. 어제가 그의 탄생일이고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사형 언도를 받습니다. 그는 형장에서 ‘만약 신의 가호가 있어 살 수가 있다면 1초라도 허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총살 직전 기적 같이 황제의 감형을 받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5㎏의 쇠고랑을 차고 유배생활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소설을 쓴 뒤 모조리 외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았기 때문에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내일이 마지막이라면 오늘이 얼마나 소중할까요? 소중한 시간들, 소중한 사람들, 여러분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까지 고마운 늦가을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밑줄긋기

○인간의 그 강한 생명력! 인간은 어떠한 것에도 곧 익숙해지는 동물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최상의 정의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것을 자각한 사람은 곧 행복해진다. 일순간에.
○불행은 전염병이다. 불행한 사람과 병자는 따로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그 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하여.
○인생, 일단 이 커다란 술잔에 입을 댄 이상,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셔버리기 전엔 결코 입을 떼지 않겠다.
○거침없이 남을 비난하기 전, 먼저 자신을 살리는 법부터 찾아야 한다.
○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무엇으로써 또한 만족을 얻을 것인가?
○돈이 있어도 이상(理想)이 없는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만약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간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도록 악마를 만들었을 것이다.
○많은 불행은, 난처한 일과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일 때문에 생긴다.

오늘의 음악

1945년 오늘은 캐나다의 포크록 가수, ‘고독한 늑대’ 닐 영이 태어난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곡 ‘Heart of Gold’와 ‘Helpless’를 준비했습니다. 뒤의 노래는 The Band의 유명한 ‘The Last Waltz’ 공연실황으로 조니 미첼이 함께 합니다.

♫ Heart of Gold [Neil Young] [듣기]
♫ Helpless [Neil Young & The Ban]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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