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이국 땅에서 쓸쓸히 떠난 큰 의사

1951년 오늘(1월 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한 동양인 노인이 쓸쓸히 숨집니다. 미국 이름은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바로 서재필 박사입니다.


서 박사는 개화파 막내로 참여한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실패, 일본으로 몸을 피하지만 이국땅에서 부모, 형제, 아내, 어린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어야했습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망명해서 태극기를 만든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가구가게에서 일하다가 도서관에서 동양 의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서 박사는 지금의 조지워싱턴 대학인 콜럼비언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민권과 의사자격증을 땁니다.


그는 개원을 했지만 이듬해 조국의 부름을 받고 귀국, 《독립협회》를 조직하고《독립신문》를 발간합니다. 독립신문에서는 계급 및 남녀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지만 의사답게 공중위생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만민공동회》를 통해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다 미운털이 박혀 다시 미국으로 쫓겨납니다.


그는 미국에서 문구인쇄업 회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3.1 운동 소식을 듣고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하고 26개 도시에 한국친우회 지부를 만드는 등 독립운동을 펼칩니다. 하지만 여기에 매달리다 자신의 회사는 파산합니다. 서 박사는 《유한양업》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와 《뉴 일한》 사를 설립했고, 유 박사가 귀국해서《유한양행》을 설립할 때 버드나무 CI를 제작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파산한 상태에서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려 62세의 나이에 다시 펜실베이니아 의대에 진학, 의학지식을 습득합니다. 병리학에 대한 논문을 5편 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이 이기면 한국이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 78세의 나이에 미군 장교에 지원해 실제로 4년 동안 근무합니다.


그는 독립 후 귀국해서 민주주의, 교육, 과학의 중요성을 계몽했습니다. 그는 홍명희 백인제 김대중 등 1929명으로부터 초대 대통령 추대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도미했다가 87세를 일기로 숨집니다. 그는 반쪽 나라의 대통령을 거절했고 통일을 염원했지만 그가 눈을 감을 때 조국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서재필, 그야말로 ‘큰 의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가 62세에 의대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78세에 미군장교에 지원했다는 얘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당시 62세면 지금의 70~80대, 78세이면 거의 90대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통합의 시대’  21세기에 서 박사처럼 그릇이 큰 의사, 끊임 없이 공부하는 의사들이 많이 나와 우리 의료환경을 건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틀스의 노래 들어보세요

오늘은 비틀스의 노래 두 곡을 준비했습니다.

1976년 오늘은 비틀스의 매니저이자 영원한 친구였던 말콤 말 에반스가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비틀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Yellow Submarine》에는 그의 목소리도 들어 있습니다. 이와 함께 《Let It Be》를 들어보시죠.
 


▶Yellow Submarine 듣기

http://ww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9250&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Let It Be 듣기 

http://ww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9251&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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