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꽃을 핀, 은둔의 화가

[이성주의 건강편지]세잔의 사과

겨우 꽃을 핀, 은둔의 화가

인류를 움직인 세 개의 사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셋째는 세잔의 사과라고 합니다. 화가 모리스 드니는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껍질을 깎고 싶지 않다. 잘 그리기만 한 사과는 군침을 돌게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고 해석했습니다.


1906년 오늘(10월 22일) 세잔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늘 “그림을 그리다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폭우 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귀가하면서 넘어진 후유증으로 폐렴에 걸려 숨졌습니다.


세잔은 모자 제조업자인 아버지의 손에 떠밀려 법대에 진학해서 방황하다 작가인 친구 에밀 졸라의 권유로 다시 붓을 잡습니다. 그러나 에콜 데 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에 계속 떨어졌으며 살롱 전에서도 낙선을 거듭합니다. 모네, 피사로, 마네 등과 ‘패자들의 전시회’를 열었을 때 평론가들은 “임신부는 세잔의 그림을 빨리 지나쳐라. 인물 색이 너무 기괴해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비아냥댔습니다.

세잔은 평생 고독하게 그림에 몰입했습니다. 어머니가 별세한 날 오후에도 작업을 했고, 병역 기피로 수배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남부 프랑스 에스타크에서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를 작업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모델의 자세를 150번이나 고쳤습니다. 이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유독 아내 오르탕스의 초상화가 많다고 합니다.


세잔은 현대미술의 막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법에 반기를 들고 화가의 인상에 따라 사물을 표현하고자 한 인상파에 속하지만, 순간적인 인상보다는 사물의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하나의 화폭에 담아 그의 그림은 마치 몇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둘러앉아 그린 듯합니다. 세잔의 그림은 입체파(Cubism)의 등장을 불렀고, 세잔이 없었으면 피카소도 없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의 욕심이 아들의 욕구를 꺾었다면, 졸라나 오르탕스가 없었다면, 프랑스가 기존 시각이나 작은 흠으로 ‘실패한 천재들’을 묻는 사회였다면 현대미술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녀나 주위 사람의 천재성을 누르고 있지는 않나 되돌아보게 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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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있다면 세잔의 그림들을 감상해보세요. 배경음악인 드비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절묘하게 어울리는군요.

 

▶세잔과 드비시 감상하기

http://test2.kormedi.com/cmnt/Scrap/View.aspx?seq=8249&page=1&searchField=Subject&searchKeyword=
 


세잔 밑줄 긋기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생명의 1분이 지나간다. 그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잊어라. 그것 자체가 되라. 풍경은 마음 속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 살아있는 것이 된다.


○예술가는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굳센 정신을 지녀야 한다.


○천재성은 일상의 감정을 새롭게 만드는 능력이다.


○화가는 단순히 자연을 모사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해석해야 한다.


○자신의 힘을 깨닫는 사람은 겸허해진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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