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호흡법이 없었다면….

1846년 오늘(10월 16일) 미국 보스턴 찰스강변, 하버드대 의대의 수술용 원형강의실.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과 존 워런은 의사들과 의대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페인트공 길버트 아보트의 목에 생긴 혈관종을 제거했습니다.

이전의 수술이라면 신음이 강의실에 울러 퍼져야 했겠지만 수술도구의 금속음만 들렸습니다. 마취흡입법의 도입으로 인류가 수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현장이었습니다.


비록 BC 200년 경 중국 삼국시대의 신의(神醫) 화타가 ‘마불산(麻沸散)’이라는 약을 환자에게 복용케 해 온몸을 마취시키고 수술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전설’이 아니라 검증의 마당에서 마취수술을 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모턴은 전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대에 일하던 술집의 돈을 빼돌리다 동네에서 추방됐고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조카를 사칭하며 사기행각을 벌이다 수배를 당했다고 합니다. 볼티모어 치대를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후일 ‘학력 위조’로 드러납니다.

모턴은 고향에서 은신하다 ‘순진한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의 환심을 사 제자로 들어갑니다. 웰스의 도움으로 하버드대도 다니고 볼티모어의 워싱턴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스승 웰스는 ‘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를 발명했지만, 하버드대에서의 실연에서 실패하고 낙담합니다. 모턴은 이를 지켜보다 잭슨이라는 하버드대 출신의 과학자의 조언을 듣고 매독 치료제와 환각제 등으로 쓰이던 ‘에테르’를 마취제에 추가합니다. 


웰스는 주위 사람이 특허신청을 제안했을 때 “마취제는 공기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고 거절했지만, 모턴은 잭슨과 죽을 때까지 특허싸움을 벌입니다.


사실 모턴보다 앞선 1842년 크로포드 롱이라는 의사가 에테르 흡입을 즐기는 비행소년에게서 힌트를 얻어 마취제로 사용했지만, 그는 ‘환자에게 환각제를 흡입시키는 품위 없는 의사’라는 지탄이 두려워 학계에 보고하지 않아 ‘선수’를 빼앗깁니다. 평판에 연연해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요?


보스턴 근교, 모턴의 묘비명 마지막에는 “그로 인해 과학은 고통을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의학의 열매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마취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지금은 당연히 이뤄지는 많은 수술이 아예 불가능했을 겁니다. 오늘, 또하나 감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마취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Q>온몸마취를 자주 받으면 머리가 손상된다?

  – 그렇지 않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구강질환으로 20회 이상 마취를 받았어도 ‘20세기의 천재’란 말을 들었다. 마취약은 뇌세포를 잠들게 할 뿐, 죽이지 않으므로 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기의 산소농도가 20%인데 비해, 마취 때에는 50%가 공급되므로 뇌가 되레 신선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Q>마취 때에도 꿈을 꾸나?

  – 꾼다. 특히 마취유도제로 쓰이는 수면제의 일종인 케타민은 깊은 수면효과가 있고 부작용은 거의 없지만 마취 중이나 깰 때 심한 악몽을 꾸게 만든다.


Q>시술 순간에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기억 못하게 하는 마취법도 있다던데?

  – 위 내시경 검사 때 미다졸램이란 약을 투여하면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지만 검사가 끝나면 아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짧은 시간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Q>임신부가 전신마취를 받으면 기형아 출산이 높아진다는데?

  – 그렇지 않다. 다만 임신부가 위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있는 상태에서 마취받으면 음식물과 위산이 식도를 통해 폐로 들어갈 위험이 있다. 또 소아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취 받으면 기도가 막힐 우려가 있다.


Q>영화 ‘리턴’에서처럼 마취 때 몸은 안 움직이고 고통을 느낄 때가 있나?

  – 아주 드물지만 있다. ‘전신마취 중 각성’이 생기면 몸은 꼼짝 못하지만 통증과 각성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통증은 없지만 정신은 또렷해 수술실의 대화를 모두 듣게 되는 경우는 통증을 느끼는 각성보다는 훨씬 더 많다.

Q>무통분만법을 개발한 사람이 화형당할 뻔 했다는데?

  – 맞다. 제임스 심프슨 박사는 무통분만을 유행시켰지만 교회에서 “산통(産痛)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며 화형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무통분만으로 아들 레오폴드를 낳아 심프슨은 살아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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