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못 느끼고 치유 빠른 ‘미즈 언브레이커블’의 유전적 특징 발견

통증 관련 특정 돌연변이로 유전자 797개 활성화, 348개 비활성화

육체 및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못해 주목받던 ‘수퍼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평생 육체적 통증은 물론 불안과 두려움과 같은 정신적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수퍼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네스호 인근에 사는 조 카메론(75). 그는 영화 ‘언브레이커블’의 주인공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 분)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미즈 언브레이거블(Ms. Unbreakable)’이라 부를 만하다. 다만 던과 달리 골절상을 입긴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회복이 엄청 빠르다는 차이가 있다.

카메론은 8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팔이 부러진 적이 있지만 사흘 뒤 팔이 이상하게 매달려있는 것을 엄마가 발견할 때까지 골절 사실을 몰랐다. 또 오븐에 팔이 타 들어가는 데도 살이 타는 냄새를 맡기 전까지 이를 알지 못했다. 출산을 두 번이나 했지만 산고가 없었고 차량전복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65세 때 심한 염증성 관절염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진통제도 필요 없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대(UCL) 연구진은 이 할머니의 사례를 6년간 조사해 2019년 학계에 보고하면서 이 할머니가 FAAH-OUT이라는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4년간의 추가 연구를 통해 이 유전자가 어떻게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24일(현지시간) 《뇌(Brain)》에 발표된 UCL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의 BBC와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보도한 내용이다.

FAAH-OUT이 포함된 게놈 영역은 이전에는 뚜렷한 기능이 없는 정크 DNA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이 영역이 통증, 기분 및 기억에 관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유전자 인 FAAH의 발현을 조정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FAA는 엔도칸나비노이드 시스템(ECS)의 일부를 구성하는 유전자다. ECS는 인간의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전체에 걸쳐 발현되는 카나비노이드 수용체 단백질로 구성된 생물학적 시스템이다.​환경 변화에 대응해 신체를 안정된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항상성 유지를 담당한다. 그 영향을 받는 생맂거 현상으로 식욕, 기억, 면역기능, 통증, 기분, 염증, 생식 및 수면이 포함된다. 이중 FAAH는 통증과 기분, 기억을 담당한다.

연구진은 FAAH-OUT이 FAAH의 발현을 조절하는데 카메론에게서 발생한 특정 돌연변이로 인해 FAAH의 발현이 크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로 인해 카메론의 FAAH 효소 활성 수준은 크게 떨어졌다.

연구진은 카메론에게서 797개의 유전자 활성화와 348개의 유전자 비활성화를 발견했다. 활성화된 유전자에는 뼈 재생과 관련된 WNT16 유전자의 활성 증가를 포함해 상처 치유와 관련된 WNT 경로가 포함된다.

그들이 발견한 다른 두 가지 주요 변형 유전자는 기분 조절과 관련된 BDNF와 오피오이드 수치 조절을 돕는 ACKR3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유전자 변화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카메론의 낮은 불안, 공포 및 통증 수준에 기여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책임자인 UCL 의학부의 제임스 콕스 교수는 “조 카메론의 독특한 표현형의 유전적 근원을 처음 발견했을 때가 ‘유레카의 순간’이었다면 정말 흥미로워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이번 연구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분자 수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기에 언젠가 환자에게 광범위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 발견의 가능성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공동 연구책임자인 UCL 의학부의 안드레이 오코로코프 교수는 “FAAH-OUT 유전자는 광활한 대륙의 한 작은 구석에 불과하며, 이 연구를 통해 본격적인 지도작성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무통증에 대한 분자적 근거 뿐 아니라 상처 치유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분자 경로를 확인했다“며 ”이 모든 것이 FAAH-OUT 돌연변이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통증 완화와 우울증 치료 같은 연구 분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094-5)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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