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돌·필] 영원한 공포는 없어… “공황장애, 이해가 치료의 시작”

코메디닷컴X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3)

공황발작은 일상 생활 중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0대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생애 처음으로 휴직을 했다. 20년 넘게 출근길에 탔던 지하철, 그날은 노란색 플랫폼선을 넘을 수 없었다. 한 발만 디디면 승차칸이었지만, 그 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숨이 막혀왔고, 지하철에 올라탄다면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손발은 부들거렸고, 식은 땀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주저앉아 한참을 심호흡과 씨름을 하다 증상은 간신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날도, 그 다음날도 출근할 수 없었다. A 씨는 공황장애라는 병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일상에서 만난 맹수…”내 공포 누가 알아줄까”

A 씨는 처음 공황발작을 겪은 뒤 1년 넘게 공황장애로 힘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직장 생활도 잠깐 ‘멈춤’ 상태에 들어갔다. 외적인 성취에만 집중해왔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내면 돌보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긴 하지만, 실제 공황 발작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아마 이 기분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 수 없는 공포가 온몸을 헤집고 다니고, 뭔가 알 수 없는 방아쇠가 당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멈추지 않으면서 일상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A 씨)

공황장애는 넓은 범위의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공황발작이라고 불리는 극도의 공포 상태가 한달 4회 정도 이상 지속될 경우 공황장애로 진단 받게된다. 환자는 언제라도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공공 장소나 대면 만남을 피하게 된다. 공황장애가 심화하면 식사도 수면도 힘들어지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청담삼성정신건강의학과의원 최관우 원장(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은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공황장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정보는 공황장애 환자들을 내외적으로 괴롭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환자들의 내면에는 공포감을 심어주고, 사회적으로 환자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 실제로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례도 환자 커뮤니티에는 올라온다.

“공황장애란 불안이 극대화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몸의 반응입니다. 심리적으로 우리가 호랑이와 같은 위협적인 맹수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사실 공황 자체는 생존에 유리한 증상이다. 뇌 속 ‘편도체’로 불리는 기관이 경보 체계를 작동해 위험 상황에서 도망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심의 사무실에서 갑자기 맹수를 만났을 때와 같은 극도의 공포감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지나친 카페인, 수면 부족, 우울증과 같은 각종 정신 질환 등 여러 요인들이 이처럼 우리 몸의 경보 체계를 교란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래픽=장자원 기자]

뇌가 위험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경우에 일상은 쉽게 망가진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만 최 원장은 공황장애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황장애가 꼭 심리적으로 특별히 연약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이나 업무에서 혹사를 당하고 이로 인해 신체적으로도 관리가 부족해지며 발병하기도 합니다. 과음이나 수면 부족, 과다한 카페인 섭취, 운동 부족 등의 요인이죠. 대인관계 스트레스나 직장 내 압박감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가족을 잃거나, 자녀들의 학폭 피해, 가정 불화, 직장 내 위기 등 한 가지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일이 한꺼번에 2~3가지가 몰려오면서 병을 앓는 경우도 진료 현장에서 자주           봅니다. 살면서 누구라도 겪을 수 있습니다.”

공황장애는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초기에 증상이 미미한 탓도 있지만, 환자 스스로가 본인이 겪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공황의 유형을 단번에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공황장애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내가 특별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 연예인처럼 특수한 직업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초기의 공황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도 많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공황도 초기에 발견할 경우 훨씬 더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최 원장은 우리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에 좀 더 관대하고 민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황 증상은 마음에서 보내는 ‘나 좀 살려달라’는 신호, 아니면 ‘나를 조금 되돌아보라’는 어떤 시그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라도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도 가빠지면서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 반드시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것은 스트레스에서 도망치고 회피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한 보 전진을 위해서 잠깐 멈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치료 효과 좋은 공황장애, 희망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2017년 약 13만 900명에서 2021년 약 20만 명으로 짧은 기간 44.5%(6만 명)나 급증했다. 최 원장 역시 우리나라 인구에서 최대 100만~200만 명까지도 공황장애를 겪거나 겪고 있을 수 있다고 추산한다. 각국의 역학 자료를 살펴볼 때 대체로 국가 단위의 공황장애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1.5~5%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황장애는 조기 발견이 어렵다. 발작을 처음 겪은 경우 많은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런 신체적 이상이 없고, 발작이 계속 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이들이 많다.

정신건강 전문의들 사이에선 공황발작을 갑자기 발생하는 고열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열은 다양한 질병의 발생을 알리는 신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면역체계가 반응하면서 고열이 나는 것처럼 스트레스나 과로 등으로 정신 건강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발작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공황장애는 정신질환 중에서도 치료효과가 상당히 좋은 질환이기 때문이다.

“투약을 하신 지 한 일주일 만에도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가 꽤 자주 있습니다. 공황장애로 휴직을 논의하러 왔다가 짧은 기간 치료약을 복용했는데 증상이 크게 호전하면서 그냥 직장을 다니고 일상에 복귀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증상이 아주 활발할 때, 즉 급성기엔 치료가 불을 끄는 일과 비슷하다고 환자분들께 얘기해드립니다. 이 때는 그 증상을 없앨 수 있는 최대한의 용량까지 2~4주 정도 약을 쓰고요. 불이 일단 꺼지고 나면 저용량을 사용하면서 유지 치료를 이어갑니다. 이 기간은 3~6개월에서 길면 1년 정도까지 소요합니다.

이때 인지교정 등의 보조 치료도 병행하면 보다 더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공황을 겪는 환자분들은 실제론 그렇지 않은 데도 스트레스를 느끼는 순간이나 상황에서 자신이 죽을 것 같거나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잃을 것 같은 공포와 걱정을 느낍니다. 이를 ‘자동화된 사고’라고 말하는데요. 이런 느낌이 들 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호흡법과 긴장감 이완 방법 등을 연습하며 자동화된 사고를 바로잡도록 교정합니다.”

최 원장은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자신이 걱정하는 것보다 더욱 강인하고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환자들 모두가 발병 전까지 과중한 스트레스를 상당 시간 충분히 잘 버텨왔던 만큼 개개인의 잠재력이나 (심리적) 기능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이 결과 의료진의 개입 정도보다 더 높은 효용의 치료 효과도 스스로 낸다는 말이다.

“공황 환자분들은 기본적으로 잠재력이 크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황이 잘 발생하는 특정 환자군이 있다곤 할 수 없지만, 대체로 그 중심에는 불안과 걱정, 긴장, 화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여러 가지 커다란 일들을 이미 감내해오신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불안들이 만성화하고 축적한 상황에서 공황 발작이 터지게 되는 사례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왜 이런 질병이 걸렸을까에 집중하기보다) 긴장을 바로바로 풀어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저 역시 공황 환자분들을 진료할 땐 최대한 환자분들이 걱정과 불안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덜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합니다.”

최 원장은 스트레스 해소를 단계화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올라올 경우 그 순간을 좀 멈추고 이완화 호흡법, 짧은 산책 등 당면한 불안 상황을 피하는 구체적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방법은 본인의 감정을 이완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불안을 불러오는 근본 원인을 찾는 작업도 물론 병행해야 한다.

“조금 여유를 갖게 됐다면, 본인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들을 마치 물건처럼 마음 속 책상 위에 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말 자신을 가장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입니다. 몇 년 전의 것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본인을 스트레스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은 오히려 어떤 사건이 아니라 운동을 안하고 지나치게 카페인을 섭취하는 생활 습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은 공황장애 치료에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나는 90점으로 살고 있다”

최 원장은 스트레스가 만연한 한국 사회 속에서 여유를 갖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신질환을 잘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좀 관대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늘 90점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본인을 다독거려주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황장애를 겪는 분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알게 될 경우 주변에서, 심지어는 가까운 사람들도 자신을 한심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그 자신이 굉장히 좀 무능력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병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항상 0점과 100점을 오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부족한 면이 있다면 언제나 한 10점 정도만 모자란 90점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가끔 10점을 못 채웠다고 0점을 맞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자신에게도 여지를 좀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이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좀 피할 수 있는 여지, 쉴 수 있는 공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주변인들의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편견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광장 공포증을 예로 들자면, ‘광장’이란 곳은 숨을 곳이 없어서 광장이기도 하고 나를 도울 이가 없어서 광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광장공포증 환자가 외부에 나설 땐 친밀한 사람과 동행하면 증상이 나아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힘들어 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다면, 환자들에게 (앞으로 가라고 하기보다) 쉴 곳, 도망칠 곳이 되어주는 것이 이 분들을 돕는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은숙 기자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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