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긴 사람, 암 발병 위험 높다?

혈액암, 심혈관질환 위험도 커져

텔로미어가 길수록 암에 걸리거나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DNA의 가닥인 염색체의 양쪽 말단부를 구성하는 텔로미어가 세포의 수명을 결정하는 분자시계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일정한 염기서열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지닌 텔로미어는 세포의 분열 과정에서 완벽히 복제되지 못하는 탓에 조금씩 짧아지다 결국 소실된다. 이것이 세포 노화의 원인일 수 있기에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으면 노화도 멈출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이다. 그에 따라 텔로미어가 길면 장수할 것이란 추론이 유행하게 됐다.

이러한 직관적 추론이 오류임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텔로미어가 길수록 암에 걸리거나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4일(현지시간)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된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내용이다.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메리 아르마니오 교수(종양학) 연구진은 짧은 텔로미어는 건강 문제를 일으키지만 긴 텔로미어도 그 자체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텔로미어가 길면 암과 혈액암 및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키는 혈액질환인 클론성조혈증(CHIP)이 유발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텔로미어의 발견으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의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명예교수는 긴 텔로미어와 질병 사이의 직접 연관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논문”이라고 평했다. 그는 장점이 있으면 모든 트레이드오프에는 이익과 비용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라고 밝혔다. 이번 논문은 아르마니오스 교수가 20년 전에 시작한 연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텔로미어 연구 초기 과학자들은 젊은이가 노인보다 더 긴 텔로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할 때 텔로미어는 일종의 시계 역할을 하여 세포가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텔로미어는 곧 노화의 비밀로 환영받았고, 회사들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하여 생물학적 나이를 알 수 있다고 광고했다. 다른 사람들은 보충제로 텔로미어를 보존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르마니오스 교수와 일군의 과학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좁은 범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텔로미어가 매우 길거나 매우 짧을 경우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해석했다.

여러 그룹의 인구 연구 결과는 텔로미어가 길면 오래 산다는 통념을 뒷받침하는 듯 보였다. 연구자들은 정상적인 텔로미어의 양쪽 끝에서 질병 위험 증가와 상관관계(인과관계는 아님)를 발견했다. 평균보다 짧은 텔로미어를 가진 사람은 면역 체계 문제와 다양한 퇴행성 질환, 폐 질환인 폐섬유증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보다 긴 텔로미어를 가진 사람들은 암에 걸릴 위험만 약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몇 가지 수수께끼가 남았다.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DFCI)의 벤자인 에버트 종양학 회장은 “생쥐와 같은 일부 유기체는 엄청나게 긴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지만 생쥐는 그렇게 오래 살지 않는다”라고 이를 설명했다.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텔로미어 센터의 책임자로 인가유전학자인 아르마니오스 교수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인간을 연구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포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유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서 ”텔로미어가 길어지는 것에는 어떻게든 대가가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대가를 확인하기 위해 텔로미어가 매우 긴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텔로미어가 길어질 수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인 POT1을 지닌 5가족 17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의 나이는 7세부터 83세까지 다양했지만 매우 긴 텔로미어를 갖고 있었다. 또한 갑상선암이나 자궁근종 같은 양성 종양부터 흑색종이나 혈액암과 같은 악성 종양까지 다양한 암을 갖고 있었다. 실제 2년간의 연구 기간 동안 4명이나 되는 환자가 암으로 사망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프레드릭에 사는 해리엇 브라운(73)은 대표적 사례였다. 매우 긴 텔로미어를 지닌 그는 목과 목구멍에 신경절절종이라는 양성종양과 갑상선암, 2가지 종류의 흑색종을 동시에 갖고 있다. 또한 심장병 및 혈액암과 관련된 혈액 질환인 CHIP도 앓고 있다. 자주 검사를 받고는 있지만 더 많은 종양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의 노먼 샤플리스 교수(전 국립암연구소 소장)는 브라운 씨와 같은 사람에게 긴 텔로미어가 미치는 영향을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긴 텔로미어는 세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OT1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의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 할 때마다 짧아지지 않는다. 따라서 세포가 규칙적으로 분열해도 돌연변이는 계속 유지된다. 따라서 세포가 체내에서 분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작위 돌연변이가 축적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중 일부는 종양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

특히 세포가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혈액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부 혈액 세포의 POT1 돌연변이는 성장에 선택적 이점을 제공하는 다른 돌연변이를 축적할 시간을 줄 수 있다. 그로 인해 돌연변이 가 발생한 혈액 세포 중 일부는 사람의 골수를 거의 점령하고 그 결과가 CHIP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CHIP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이전에는 CHIP을 가진 사람은 혈액암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에 CHIP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마니오스 교수는 긴 텔로미어가 CHIP을 초래하는 동시에 독립적으로 세포에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킬 시간을 준다고 설명했다.

샤플리스 교수는 “노화 생물학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블랙번 명예교수는 “긴 텔로미어가 영원한 젊음의 비결이 아니다“라면서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300503)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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