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의사의 진료 시간은? 3분 vs 16분

[김용의 헬스앤]

의사의 ‘3분 진료’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특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병원의 경영 상태, 전문의 부족 등이 결부되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례 1) 척추질환을 앓고 있는 A씨는 최근 3개월 동안 다니던 병원을 바꿨다. 진료 때 마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며 비싼 약만 처방하는 의사가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상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묻는 말도 늘 똑 같았다. 말로만 들었던 ‘3분 진료’를 매번 경험한 것이다. 건물 몇 개 층을 쓰는 상당한 규모의 병원인데 건강보험이 안 되는(비급여) 약 처방은 혼자서 하는 것 같았다.

사례 2) 나이 구십이 넘은 내과 의사 B씨는 은퇴했다가 환자들의 잇단 요청으로 ‘은퇴 번복’을 해야 했다. 수십 년 동안 진료했던 단골 환자와 그 가족들이 B씨의 진료를 강력히 원했기 때문이다. 내실 있는 중소병원의 오너인 이 의사는 나이를 감안해 오전에만 환자를 본다. 오랫 동안 그를 찾았던 환자 위주로 각각 15~20분 정도 진료를 한다. 현재 먹고 있는 음식 종류부터 운동량까지 일일이 물어보며 상담한다. 그는 “단골 환자들의 성화로 나이 구십에도 쉬지 못하고 불려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2022년 의료서비스 경험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사의 외래 진료 시간은 평균 8.9분이었다. 진료를 받기 위한 평균 대기 시간은 16분으로 거의 두 배로 나타났다. 1년 동안 병·의원 외래 진료를 받았던 국민 1만64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진료 시간은 1분에서 5분 사이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9.2%로 절반에 육박했다. 진료실 밖에서 16분을 기다려 5분 이내로 의사를 본 것이다.

의사의 ‘3분 진료’는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특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병원의 경영 상황, 전문의 부족 등이 결부되어 있다. 특히 월급을 받는 봉직의는 병원 수익을 생각해야 한다. 한 환자의 진료 시간을 늘리다 보면 전체 환자 보는 시간이 줄고 대기 환자들도 불만이다. 이른바 ‘명의’는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고민이다. 몇 개월 예약대기 끝에 겨우 기회를 얻은 환자들의 ‘진료 갈증’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3분 진료’ 의사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들도 의대 시절부터 환자와 눈을 맞추고 소통하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신뢰와 친함을 의미하는 ‘라포르(rapport)’는 의사 사회의 필수 덕목이다. 요즘은 의학지식이나 진료 기술 외에 환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시대다. 진료 성적이 뛰어난 의사라도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면 ‘명의’가 되기 힘든 세상이다. 의대에서 ‘의료커뮤니케이션’ 과목을 배우고 의사시험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통과해야 한다.

의사를 둘러싼 팍팍한 현실이 환자와의 ‘라포르’를 막는 장애물이다. 대형 병원 경영인은 대부분 의사지만 요즘은 수익에 너무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월급쟁이 병원장은 오너의 눈치를 살펴야 임기를 평탄하게 보내고 연장도 할 수 있다. 연봉을 많이 주는 전문의를 적게 고용해 인건비를 절약하는 일부 병원도 있다. 수도권 큰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데 전문의가 부족하니 진료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대기 환자들은 “진료 서비스가 낮다”고 성화다. 대형 병원 의사는 병원장과 환자 사이에 끼어 마음고생이 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수도권 대형병원은 분원을 늘려 중소병원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큰 병원, 작은 병원 가릴 것 없이 무한경쟁 시대가 되다 보니 일부 동네병원은 환자가 줄어 울상이다. 그 사이에 낀 중소병원은 위치가 더욱 애매해지고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병원 홍보전에 열을 올려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의사의 실력이나 진료방식이 드러나 환자가 떨어져 나가면 신규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홍보비를 증액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들이 수십 년 간 90대 중반 의사를 찾는 것은 친숙함 때문만이 아니다. 명문 의대 정교수 출신인 그는 지금도 온라인으로 국제 학술지를 보며 최신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있다.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일찍 병원을 차려 부를 쌓았지만 더 큰 돈에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대학이나 대형병원을 설립하라는 유혹이 많았지만 묵묵히 한 곳에서 내실 있는 병원으로 키웠다. 그는 “나를 찾는 환자들이 좋아 평의사 생활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병원 사업이나 대형 병원장 자리를 멀리하다 보니 건강도 지켜 100세를 눈앞에 둔 현역이다.

이 의사가 20분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병원 오너여서 자신만이 진료 철학을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병원 경영과는 무관한 자리에 있는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요즘 ‘의사’ ‘병원’을 얘기하면 연봉, 매출 등 돈 문제가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부 미디어의 책임도 있지만 의사들, 특히 병원 경영인들은 초심을 회복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하지만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요즘은 인술(仁術)을 얘기하면 케케묵은 말처럼 들린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란 뜻으로, ‘의술’을 높여 부르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선배 의사들은 ‘인술’을 가슴 속에 담으며 대한민국을 의료강국으로 키웠다. 전교 1등이 의대로만 몰리는 시대에 연봉보다는 ‘인술’이 다시 부각되길 기대한다면 부질없는 생각일까?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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