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돌·필] “그만 나를 미워하고파”…ADHD 희망을 찾아서

코메디닷컴X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2)

성인ADHD 환자가 겪는 고통은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4년까지 살아있기’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환자들의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2023년 새해 다짐 중 하나다. 짧은 문구지만,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엿볼 수 있다. 해당 게시판에는  ‘나를 미워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등과 같은 문구가 서로 응원하듯 어깨걸이를 하고 있다.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행동해 계획성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주의가 부족해 일이나 공부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질병. 성인ADHD는 최근 가장 관심을 받는 정신건강 질병 중 하나다. 지난 6년간 ADHD 진단을 받은 성인이 5배 넘게 폭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ADHD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 ADHD 진단을 받은 성인(20~80대)은 2017년 7748명에서 2022년(1~9월) 4만5018명으로 약 5.81배나 증가했다. 전체 ADHD 진단 환자 중 성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14.59%에서 38.30%까지 높아졌다.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이라는 간단한 말로 요약되는 듯 하지만, 성인ADHD 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삶의 애환과 고충은 간단히 헤아리기 힘들다.

지난 해부터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김경수(53 가명) 씨는 지난 몇 십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싶어 가끔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복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소를 찾은 그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우울증 환자라고 생각해왔다.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어봤지만 늘 알 수 없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걸을만한 길만 좁게 남겨진 채 쓰레기로 가득 찬 방 안이 그나마 유일한 안식처였다.

원활하지 않은 인간관계 탓에 김 씨의 인생은 오랫동안 외로웠다. 젊은 시절에는 이른바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탈교하기는 했지만, 이미 많은 것은 놓쳐버린 후였다.

성인ADHD를 주제로 코메디닷컴과 인터뷰를 가진 성모공감정신건강의학과 송민규 원장은 “(성인ADHD로) 병원을 찾는 많은 분들이 진단을 ‘이제서야’ 받은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면서 “좀더 일찍 병에 대해 알았더라면 직업이, 성적이 혹은 인생 전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코메디닷컴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송민규 성모공감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송 원장은 ADHD는 환자들이 많은 기회를 잃게 하는 질환이라고 지적했다. [사진=황태원 기자]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삶의 기회들

ADHD 환자들은 학업, 취직,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에서 좌절을 맛보는 경우가 많다. 노력을 해도 주의력이나 통제 부족 탓에 아쉬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코올이나 도박 탐닉 등 쉽게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전보다는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이 늘었지만, 성인ADHD 환자 중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은 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성인의 경우 어린 시절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과잉행동이 줄어들면서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하거나,긴 시간 질병을 앓다가 아예 ADHD 환자의 삶에 익숙해진 채 살아가기도 한다. ADHD로 인한 증상을 고칠 수 없는 원래 성격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송원장은 ADHD 환자들을 만나며 가장 안타깝게 여겼던 대목은 ‘기회의 제한’이라고 꼽았다.

“ADHD는 질병 자체의 증상만으로도 힘들지만, 우울증, 조울증과 같은 공존질환이 상당히 많은 것도 환자를 힘들게 한다. 물론 모든 공존질환이 ADHD가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데, 서로가 영향을 미치면서 악순환이 만들어 질 수가 있다. 노력을 해도 실수가 이어지게 되면 스스로 위축이 되고  환자는 본인 능력이나 재능과는 상관 없이 (질병의 증상에 막혀) 제한된 삶의 영역에서 살 수밖에 없다.”

부모의 편견으로 소아청소년기 때 제대로 ADHD 증상에 대처하지 못해 그대로 성인 ADHD 환자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송 원장은 “연구마다 다르지만, 소아기의 ADHD 환아들이 성인ADHD 환자가 되는 비율은 최소 50%이상이다”라면서 “극단적으로는 한 80% 까지 나온 경우도 있으며, 성인ADHD를 겪는 분들 대부분은 소아기 때 증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종종 ‘우리 애는 게임은 엄청 오래한다’며 길게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학부모들이 있는데, ADHD가 있는 이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는 보통 사람 못지 않게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좋아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물 치료가 가장 효과적…예방보다는 관리가 필요

ADHD가 의심되는 경우라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게 좋다. 설문을 통한 진단법과 뇌파 검사, 지능 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종합해 진단을 내릴 수 있다.

“ADHD는 생물학적 질환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약물 치료가 상당히 중요하지만, 처방하는 약물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가까운 병원을 찾아도 문제는 없다. 증상이 심각해 전문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정신건강 관련 학회 등에서 전문 병원을 안내하고 있으니 찾아보면 됩니다.”

전문가들은 ADHD 핵심 증상 치료에 약물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경전달물질과 회로와 전전두엽피질의 두께 등에서 문제가 발견되는 뇌 질환이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의 경우에는 약물이 뇌 신경의 발달을 돕기도 한다. 현재의 증상 완화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뇌 발달의 정상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성인의 경우에는 뇌 발달까지는 아니지만, 질병으로 인한 일상의 불편을 덜어주는 데 약물이 도움을 줍니다. 성인의 경우에는 ‘안경 끼는 것이랑 비슷하다’는 비유가 나오기도 합니다.”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공포는 인터넷 상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약물은 위험에 비해서 효용, 즉 이득이 많기 때문에 쓸 수 있고 처방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일부의 부작용의 예들이 환자들에게 큰 혼란을 준다. 모든 약들은 그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처방이 가능하다.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가 지나치게 많다면 애초에 약에 대한 허가와 처방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

책을 집중해서 읽지 못하는 것도 ADHD 증상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DHD는 기질적인 질병이기에 예방보다는 관리가 필요하다. 약물 외적인 방법에서 심리 치료의 영역이 있는데, ADHD의 경우 인지행동치료, 행동치료 요법을 많이 사용한다. 생활을 관리하는 것이다.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던가,핸드폰 알람 등 주의력을 분산하는 상황을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교육이랑 행동 조절 교육을 통해 약물과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리 치료는 핵심 증상 개선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않지만, ADHD 환자의 경우 학교나 직장에서 잦은 실수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아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공존질환 문제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송원장은 “ADHD 환자는 질환을 앓고 있지만, 정신의학적인 질환은 피검사 결과나 X-ray 소견처럼 눈에 보이는 수치로 나타나지 않고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환자의 행동에 대해 주변인들은 ‘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냐’고 비난 혹은 비판 등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다. 환자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병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다. 우선 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이해해주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성인 ADHD 환자는 최근 몇 년 새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래픽=장자원 기자]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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