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이 서로를 찌르는 ‘못’이 되는 순간

[윤희경의 마음건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자는 좌뇌가 발달 되었고, 여자는 우뇌가 발달 됐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공대는 남학생들이 많고 인문대는 여학생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애는 자꾸 공대를 가려고 해요. 가면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우리 애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뭐랄까, 감수성이 풍부한 다른 여자 애들과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키우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진학 결정도 쉽지 않네요..”

상담을 하다보면, 아이나 자기 자신이 ‘보통’과 다르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위의 사례도 그렇다. 어머니는 아이가 공대를 진학하겠다고 하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 여자아이라서 공대 수업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여자 아이들처럼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 성별에 대한 고정 관념이 분명한 경우다. 이분은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딸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아이에 대해 의아함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어머니의 고정관념은 사실일까?

물론 겉으로 보면 인문학과에 여학생들의 비중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공대 아름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공대에 여학생 수가 적은 것도 맞다. 그러나 과학이 하는 말은 다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다프나 조엘 교수팀은 14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뇌 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의 뇌 또는 여자의 뇌라고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일관성 있게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뇌에는 성별이 없다는 말이다. 개인의 뇌 각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설명에도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쉽게 버리지 않는 분들도 있다.

최근 상담을 하면서 남성임에도 성격이 여성 성향을 가진 내담자들을 여럿 만났다. 다른 정서적 문제도 있지만, 성별 역할에 대한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부분도 내담자분들의 생활을 힘들게 했다. 이런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남성적 기준을 들고 그의 성향을 판단해야 할까? 아니면 개인의 성향에 비중을 두어야 할까? 세상이 나눈 잣대로 사람을 보다보면, 우리는 인간 하나 하나의 내면을 제대로 살펴보기 힘들다.

고정관념이 우리의 시각을 비뚤게 하는 예는 이외에도 많다. 혈액형으로 쉽게 다른 이를 예단해버린다거나, 최근 유행하는 MBTI 유형에 누군가를 가둬버리는 것도 비슷한 예다. 혹은 어릴 때 한번 한 IQ 테스트로 아이를 천재라는 틀에 가둬놓고 평생을 괴롭히는 부모도 있다.

물론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기준은 우리의 삶을 명쾌하게 만들어줘 많은 이들이 열광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한 사고는 예상보다 자주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생각은 스스로의 혹은 가장 가까운 이들의 삶을 옥죄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여자라면, 혹은 아들이라면, 딸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대나 고정관념으로 서로를 대하다보면,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망가진다. 헐뜯고 미워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쉽게 커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가끔은 돌아보자. 소통도 없이 박혀 있는 고정관념은 나도 내 주변인도 모두 다치게 하는 뾰죽한 못이 될 수도 있다.

    윤희경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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