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돌·필] 100만 우울의 시대… “병원을 찾아야 ‘나’를 찾는다”

코메디닷컴X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1)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전문가를 찾는다면 해답도 찾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에게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었다.”

18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던 작가 매튜 존스톤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우울증 환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치료율은 낮고, 자살률은 높다. 고통 받는 이들은 많으나, 도움 받은 이들은 적다는 의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이 문제를 풀어갈 수나 있을까?

 지난 22일 강북삼성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조성준 교수를 만나 오래됐지만 여전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과제에 대해 물었다. 1시간 30분 남짓한 인터뷰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실린 단어는 ‘배움’이다. 마음 돌보기의 중요성을 배워야 오래된 질문에 새 답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 ‘왜 열이 나니, 왜 기침해’라고 다그치지 않잖아요. 우울증 환자에게 너 왜 이렇게 무기력하니, 왜 의지가 부족해라고 묻는 건 똑같은 행동이죠.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일단, 우리는 왜 이렇게 우울할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는 물론이고 각종 조사에서 한국인은 행복감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삶을 산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울할까? 

“진짜 ‘삶’이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산 적이 얼마나 있을까요? 행복이라는 게 내면의 단단함, 흔들리지 않는 가치에 기반해야 하는 데, 우리는 아예 그런 것들을 생각할 기회가 없었죠. 사실 직함, 사는 동네, 배우자의 직업 하다못해 자식의 학벌 등이 본인의 자존감이라 착각하고 사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나의 행복을 내면이 아닌 외부의 가치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죠. 스트레스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조 교수는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근본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운을 뗐다. 1950년대 전쟁 뒤 잘 먹고 잘 사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길 위에서 ‘마음 챙김’은 수십 년 간 논외였다. 

“우리는 마음이나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항상 조심해왔어요. 참는 게 미덕이었죠. 최근에야 정신건강 문제가 조금씩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외면했던 만큼 현재 지표는 안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들이 정신없이 터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죠.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금처럼 언론에서도 많이 이야기하는 게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한강 다리에서 투신 시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자살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한강교량 20곳 모두 투신자살로 소방이 출동한 건수가 직전 해 대비 늘거나 같았다. 서울시는 마포대교,한강대교에 이어 자살 시도가 늘었던 한남대교, 양화대교, 잠실대교 난간을 1.65m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사진은 7일 서울 한강대교 생명의전화 모습.  [사진=뉴스1]
재발 잦은 우울증”병원을 찾아야 ‘나’를 찾는다” 

치료법은 큰 발전을 이뤘지만,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약물에 대한 오해가 대표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정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경험담이 넘쳐난다. 약 이야기가 나오자 조 교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십 년을 넘게 씨름하고 있는 주제라고 털어놓았다. 

“과거엔 정신과 약들이 실제로 환자들을 멍하게 만들거나 졸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미디어에도 이런 식으로 묘사가 많이 되지만, 최근 개발된 약들은 많이 다릅니다.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경우는 드물죠. 오랜 기간 복용해도 신체적 기능 저하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약물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약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동네에서 사서 먹는 비타민마저도 (개인에 따라) 부작용이 생기려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조 교수는 약 복용 시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을 경험할 수는 있지만, 여러 차례 시도를 하다 보면 환자 별로 자신한테 잘 맞는 약을 찾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조언했다. 약물 외에도 우울의 양상에 따라 현장에서는 면담, 인지행동 치료, 경두개자기자극법 등 다양한 방식의 치료법이 등장해 선택지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실패에 굴복해 치료를 바로 포기하고 다시 우울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조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장기 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제대로 된 치료를 막는 장애물 중 하나다. 

“모든 정신과 치료가 치료 기간이 길고, 충분한 치료를 받을 경우 재발의 확률이 확실히 낮아집니다. 안타까운 건 환자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치료를 필요한 기간보다 빨리 끝내시는 것이죠. 그러면 높은 확률로 재발이 되고, 이후 치료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조 교수는 또한 정신질환 치료법 표준화가 상당히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정신과 진료에서 ‘좋아졌다’는 의료적 판단의 근거가 명확하다는 의미다.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자신의 ‘감’이나 ‘기분’만으로 쉽게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벌어진 상처를 꿰맸다는 이유만으로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병원을 뛰쳐나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다. 

“우울증에서 회복되면 원래 갖고 있었던 원래 모습을 찾아낼 확률이 굉장히 큽니다. 일부 환자 분들은 치료 초기 단계에 좌절하고, 자신은 원래 우울한 인간이라고 단정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우울증) 증상 중 하나입니다. 꾸준히 치료하면, 원래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통칭해서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우울장애의 종류는 다양하다. 흔히 우울증이 지칭하는 것은 주요우울장애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 발행한 분류 및 진단 절차인 DSM-5를 기준으로 주로 진단한다. 보통 9개의 진단 기준 중에 5개 이상을 2주 이상 충족할 때, 그리고 이 중 ‘거의 하루종일 우울하다’와 ‘하루 대부분의 활동에서 흥미가 감소돼 있다’ 등 2개의 핵심 증상 중 하나는 반드시 나타날 때 우울증 진단을 받게된다. 

주요 우울장애 외에도 낮은 강도의 우울이 장기간 지속되는 지속성 우울장애,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증을 겪는 이들도 많다. 다만, 일반인들이 우울증의 양상을 세분화해 구별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무기력, 불면증 등의 증상이 일상에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면 일단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코메디닷컴과 22일 인터뷰를 하는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황태원 PD]
‘정신의 건강’을 배우는 사회를 향해 

“개인적으로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마음이 중요해. 너의 마음을 돌보는 게 정말 중요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교육’이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정신 건강은 고사하고 육체 건강을 돌보는 것에 대해 인색했던 게 우리 사회라고 본다. 야근이 미덕이고, 새벽까지 술 마시고 다음날 일찍 출근하는 태도를 추켜세웠던 문화가 얼마 전까지 만연했다는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건강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지만, 정신건강 분야의 중요성이 주목받은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동네에서도 정신과 병원 하나 찾아보기 진짜 어려웠습니다. 이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봅니다.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학교에서도 내가 힘들다면, 혹은 옆에 있는 친구가 힘들다면 전문가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 게 필요한데, 이런 것에 대해 현 교육 제도에서 가르치는 게 너무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앞서 언급된 의지력 저하는 물론이고, 인지기능 저하, 인식의 왜곡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전에는 매우 간단히 해낸 업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의 왜곡이 발생해 이전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말도 비난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우울증 환자의 주변인들은 환자가 ‘변했다’고 오해하고, 비난하기 쉽다. 결국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는 치료와 예방을 더욱 힘들게 한다. 

조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게 의지가 박약하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은데, (우울증 환자에게) 의지 부족은 당연한 증상입니다. 저는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께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은 의지를 병원 다니는 데 쓰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야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검진과 같은 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건강검진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이슈는 간단하고 형식적인데 본격적으로 정신건강 검진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교수는 실제 의료정책연구소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 정신건강 요소들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정신건강, 즉 마음챙김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사회가 규정짓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걷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등 스트레스를 해소 하기 위한 몇 가지 ‘무기’를 준비해놓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구의 탓도 아닌 ‘우울’”답은 반드시 있다” 

어떤 전문가는 우울증을 교통사고와 비교한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울증의 원인은 미궁 속에 갇혀있다. 조 교수는 다만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신만의 ‘무기’를 많이 가지는 것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제 때 일어나고 제 때 밥을 먹는 것, 제 때 잘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외에도 특정 요일에 자신이 좋아하는 길 걷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혹은 늘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시청하기처럼 애정을 갖고 할 수 있는 루틴을 많이 만들어 ‘리듬’있는 생활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조 교수는 우울증에 걸렸다고 자책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은) 누구나 다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울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분명히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현재 상황을 함께 고민해줄 전문가를 찾으시고 고민을 나누다보면 해법은 있는 경우가 없는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환자분이라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걸 두려워하지 마시고, 환자 주변인이면 이상한 속설을 들면서 힘든 분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시지 마시고 잘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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