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ry’와 ‘Foolish’로 고집부린 스티브 잡스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스티브 잡스는 2003년 췌장에 생긴 신경내분비종양을 발견했다. [사진=애플의 스티브 잡스 10주기 추모 영상 캡처]
아내와 친구들은 경악했다. 의사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가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한사코 우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몸을 여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들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요.” 젊은 10대에 잘못 빠져들어, ‘선불교와 채식주의와 LSD(환각제)에 영혼이 물든’ 결과다.

스티브 잡스는 2003년 췌장에 생긴 신경내분비종양을 발견했다. 바로 시한부를 선고받는 독한 췌장선암에 비해 종양의 증식도 전이도 느린, 그야말로 ‘착한’ 췌장암이다. 자서전에서 밝힌 대로 ‘전체 췌장암 사례의 약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찍 발견했기 때문에 ‘초기에 진단을 받으면 절제술로 완치’할 수 있으며, ‘방사능치료나 화학요법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수술을 받지 않으려 했을까? ‘모든 것을 그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스스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마법적 사고방식’이 암에게도 통했을까? 의사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수없이 경고했지만, 무모하게도 그는 ‘마법적 사고방식’으로 죽음에 정면으로 돌진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하연설 장면.

왜 그리도 늦게 ‘메멘토 모리’를 깨쳤을까?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하연설에서 물었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이어 그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Stay Hungry’(항상 갈망하라)와 ’Stay Foolish’(우직하게 시도하라)를 외쳤다. 두고 두고 회자되는 명연설이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에 관한 한 그의 연설은 틀렸다. 첨단의학이 권하는 수술과 치료를 거부하고, 극단적인 식이요법과 대체요법에 집착했다. 왜 자신의 건강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는 식이요법으로 ‘Stay Hungry’ 했다! 젊은 시절, 인도를 여행하면서 금식으로 몸을 ‘정화’하면 성취와 황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철저한 금식의 계명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왜 자신의 건강에 ‘바보’로 머물렀을까? 그는 대체요법으로 ‘Stay Foolish’ 했다! 엄격한 채식주의를 기본으로, 희한한 과일요법과 약초요법에 매달렸다. 자연치료 클리닉에 다니며 유기농 채소를 먹고, 주스로 끼니를 때우고, 효험이 좋다는 특정한 물만 골라 마셨다. 의사가 권하는 위 세척은 넌더리 내면서, 대체요법이 시키는 장 세척은 고분고분 따랐다. 몸을 정화시킨다는 명상술과 심령술도 그대로 믿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이었다. 오랜 투병으로 우울증이 생겼지만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했다. ‘암이나 곤경 때문에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이 들 때 그걸 감추는 것은 가짜 삶을 사는 겁니다”. 첨단기술은 그렇게 잘 활용한 그가, 현대의학은 왜 그리도 믿지 않았을까? 그는 우울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울고 한탄하고 소리질렀다. 그가 배운 명상은 통증을 이기지 못한 셈이다.

잡스는 자서전 마지막 페이지에서도 ‘메멘토 모리’를 언급했다. ‘죽음은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각!’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정말, 그랬다. 매킨토시와 아이폰으로 세계적인 혁신의 ‘전원’을 켰던 그다. 2011년 10월, 그의 아슬아슬한 생명을 지탱하던 ‘전원’이 꺼졌다. ‘딸깍!’ 향년 56세.

[신경내분비종양] Neuroendocrine Tumor. 神經內分泌腫瘍

신경계와 내분비계 조직이 뭉쳐 발병하는 종양으로, 주로 췌장, 위, 소장, 대장, 허파에서 발견된다. 암과 비슷한 경계성 종양으로, ‘유암종’(類癌腫) 또는 ‘카르시노이드 종양’(Carcinoid Tumor)이라고도 한다. 증식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거의 없다가, 다른 장기에 전이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헛배가 부르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들이 생긴다. 가족력, 흡연, 위염, 빈혈 같은 요인이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이가 없다면 수술로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고, 종양이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비교적 오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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