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안 듣는 슈퍼박테리아, 바이러스로 잡는다?

박테리오파지 치료법 대안으로 떠올라

대장균, 폐렴, 임질, 세균성 이질 등 약물 내성을 보이는 슈퍼박테리아의 목록은 점점 더 길어지는 반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줄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항생제 내성을 지닌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이 커지면서 박테리아를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를 뜻하는 박테리오파지(약자로 파지)로 이를 퇴치하는 치료법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균성 박테리아별로 천적이 될 바이러스를 선별해 분류하고 보관하는 영국 최초의 ‘파지 라이브러리’가 다음 달 문을 연다. 그 소장을 맡게 될 영국 레스터대의 마사 클로키 교수(미생물학)와 인터뷰를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3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영국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인 클로키 교수는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위험은 심각하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며 그에 대한 해법으로서 ”파지 접근법을 일회적 치료법이 아니라 일반적 치료법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만성 요로감염증(UTI)이나 당뇨병성 족부궤양 같은 질환에 대한 일반적 치료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파지 치료법은 박테리아 세포를 감염시켜 박테리아를 죽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표적이 되는 박테리아에 따라 바이러스를 달리 해야 한다. 2019년 난치성 폐 감염으로 죽어 가던 10대 영국 청소년이 완치된 이후 일회성 성공사례가 늘고 있다.

클로키 교수는 “파지를 원하는 의사와 환자로부터 꽤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받고 있다”며 “의사들도 과거에 철저히 무관심하다가 ‘지금 당장 파지를 달라’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클로키의 연구실은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어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런던의 만성 UTI 환자를 위한 ‘파지 칵테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회성 사례는 실험실에서 고가의 맞춤형 치료법을 찾고 설계하는 데만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

연구실은 이미 약 2000개의 파지를 영하 80도의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매년 약 1000개의 샘플을 늘려갈 계획이다. 파지는 자연계에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문제가 된 박테리아 균주를 죽이는 파지를 찾아내는 파지 헌팅은 시간이 걸린다. 그는 “박테리아가 많은 곳에는 당연히 파지도 많기에 하수가 주 사냥터”라고 밝혔다.

그의 제자들은 새로운 파지를 찾기 위해 진흙투성이 하구와 말똥더미를 준설하는 곳으로 파견된다. 레스터시 브래드게이트공원 하천의 슬라임(미생물로 형성되는 점액질)에서 추출한 파지 세트는 만성 UTI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막 제거에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져 앞서 언급한 런던 환자에게 적용할 후보로 고려 중이다.

클로키 교수는 “파지 연구는 매우 낮은 수준의 기술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토대로 파지의 특성과 여러 파지가 어떻게 상호 작용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항생제 내성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장균, 폐렴, 임질, 세균성 이질 등 약물 내성을 보이는 슈퍼박테리아의 목록은 점점 더 길어지는 반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줄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어 제약회사가 항암제 같은 수익성 높은 곳으로 연구개발 재원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는 이로 인해 “암에 걸리면 치료 가능한데 패혈증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파지의 광범위한 사용을 위해 임상시험을 더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 약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규정의 업데이트가 시급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파지가 무허가 의료품이기에 의사가 이를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면허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규정 업데이트를 통해 파지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이 가능해지면 특정 균주가 아니라 일반적 감염을 치료하는 ‘파지 칵테일’ 설계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감자 재배 농법에서 염소 살포 대신 파지 활용이 증가하고 있는 예를 들면서 파지 치료법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지 치료법이 항생제를 대체할 순 없겠지만 항생제를 보호하고 보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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