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관심 폭발시킨 ‘반쪽 독재자 킬러’

[오늘의 인물]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James Earl Carter, Jr)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미국 제39대 대통령이 말기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가족과 지내며 호스피스 치료를 받겠다고 밝혀 세계적으로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본명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James Earl Carter, Jr)인 카터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뇌, 간 등으로 전이돼 에모리대 윈십암센터(Winship Cancer Institute)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카터는 1924년 10월 조지아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농기구 생산·판매 등의 사업을 하는 ‘카터 상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해군장교로 복무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퇴역했다. 조지아 주 상원의원, 주지사 등을 거쳐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

카터는 대통령 재임 시절 ‘인권 외교’를 추구하면서 ‘독재자 킬러’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방국에게는 엄격하고 좌파 지도자에게는 관대했다는 비판도 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무력했고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에 실패해서 대통령 연임에 실패했다. 우리나라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면서 한국사의 격랑을 유발했다. 신군부 때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신군부의 존재를 용인하는 이중성을 보여 반미운동의 시발이 됐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1994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카터는 퇴임 후 민간외교 활동과 자원봉사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특히 세계 각국 빈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김일성 사망 14일 전 북한을 전격 방문해 사태 완화에 도움을 줬지만, 결국 북한 선전전에 이용만 당하고 북한이 핵을 개발하도록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도 있다. 애틀란타의 카터 센터에는 카터가 김일성과 악수하는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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