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강하고 백신도 없어” 인류 위협하는 ○○○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과장만은 아냐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그 숫자가 가장 많은 생명체로 세계적으로 1200만 종이나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때는 바야흐로 2003년, 동충하초가 속한 곰팡이의 일종인 코르디셉스의 일종이 개미에게서 인간으로 종(種)도약하면서 숙주를 피에 굶주린 좀비로 변화시켜 그들이 물어뜯는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다. 그 사례가 보고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최고의 진균(곰팡이의 학술용어)학자가 제안한 해결책은 도시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폭탄으로 공격해 감염의 흔적까지 깨끗이 지워야 한다는 급진적인 것이었다.

지난달 공개돼 대중과 비평가의 찬사를 동시에 끌어낸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인간사회의 최대 위협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아니라 양조사, 제빵사, 야생음식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 곰팡이라고 가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좀비 개미 곰팡이’로 알려진 오피오코르디셉스 우니라테랄리스(Ophiocordyceps unilateralis)가 기후변화에 맞춰 더 높은 온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일환으로 인간을 대체 숙주로 만든다는 것이다.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의 작가 겸 제작자로 이 작품에 참여한 크레이그 마진은 이는 이들 곰팡이가 자신들의 포자를 전파시키기 위해 개미의 뇌를 조종하는 것을 적용한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개미의 마음을 훔치듯 인간의 마음을 훔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공상과학적 상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실제 곰팡이의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미 진균 감염은 매년 약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는 결핵이나 말라리아에 희생되는 사람들보다도 많은 숫자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균류는 현재 이용 가능한 진균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새로 개발 중인 진균치료제도 없다. 곰팡이 예방 백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0월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19개의 곰팡이 리스트를 발표했다. 해당 리스트를 발표한 보고서는 “인류의 건강에 점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음에도 곰팡이 감염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관심과 자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곰팡이는 지구상에서 그 숫자가 가장 많은 생명체로 세계적으로 1200만 종이나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대부분은 분류조차 되지 않았다. 그중 극히 일부만이 인간을 감염시킴에도 매년 약 10억 명이 진균에 감염된다. 영국 엑시터대 MRC의진균학센터의 마크 램스데일 교수는 “이들 중 대부분은 무좀 같은 표면적인 것들이지만 나이가 아주 많거나 아주 적거나 면역체계가 약한 고위험군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진균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 진균은 이미 심각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감염시키기에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연간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WHO의 킬러 곰팡이 목록의 최상위에는 3가지 형태의 병원성 효모와 토양 및 썩어가는 초목에서 흔히 발견되는 아스페르길루스 푸미가투스(Aspergillus fumigatus)라는 곰팡이가 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만성 폐 질환, 또는 장기 이식 수혜자 같은 사람들이 이 곰팡이에 감염돼 발생하는 아스페르길루스증에 걸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WHO 목록에 있는 곰팡이의 일부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콕시’로 불리는 콕시디오이데스(Coccidioides)는 미국 남서부, 멕시코,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토양에 사는 균류다. 이를 흡입하는 일부 사람은 ‘계곡 열병’이라고 불리는 독감과 유사한 질병을 일으킨다. 감염된 사람의 최대 10%가 중증의 폐 질환을 앓게 되며 약 1%는 목숨까지 잃게 된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15만 명이 감염되고 약 75명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콕시의 감염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계곡 열병은 최근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워싱턴주 북쪽까지 감지됐다. 보고된 감염자의 수 또한 1998년과 2015년 사이에 400%나 증가했는데 기후변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진균 감염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아스페르길루스증과 점막진균증, ‘검은 진균 증후군’이다. 이러한 진균 감염은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폐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폐 손상이 늘어나면서 이들 진균감염도 늘고 있다고 의사들은 보고 있다.

특히 점막진균증의 증상은 섬뜩할 정도다. 콧구멍에서 시작해 눈과 뇌를 포함한 주변 조직과 기관으로 확산돼 피부가 검게 변하고, 얼굴이 붓고, 시야가 흐려지며, 의식이 변하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일부 환자는 두 눈의 시력을 잃거나 감염된 뼈와 조직 제거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진균성 질병은 무섭긴 해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대부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확산이 제한되는 특별한 환경에서만 자란다. 예를 들어 털곰팡이증(Mucormycosis)은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인도에서 70~80배 더 많이 발생한다.

모든 법칙엔 예외가 있는 법. 그중 하나가 칸디다속 진균이다. 효모의 친척으로 아구창을 일으키는데 인류가 개발한 항진균제를 빠르게 무력화시키고 있어 WHO의 중대 위협 목록에 올라 있는 위험한 놈이다. 다른 진균류와 마찬가지로 주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을 먹이로 삼는데 만약 혈액이나 다른 장기로 침투할 경우 감염자의 생존 가능성은 50대 50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 등장하는 곰팡이균처럼 칸디다 속 진균도 최근에 인류에게 출현했다. 2009년 도쿄의 70세의 일본 여성의 귓구멍에서 발견되면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드러났다. 그러나 몇 년 안에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전역에서 이 곰팡이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ICL) MRC글로벌감염병분석센터의 매튜 피셔 교수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많은 최전선 항진균제에 내성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절대적인 악몽”이라고 말했다. 소독제와 열에도 부분적으로 내성이 있어 근절이 극히 어렵다. 이 곰팡이가 발견되면 전체 병동은 잠정적 폐쇄가 불가피하다.

칸디다속 진균이 어디서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피셔 교수는 “저 밖에 사는 무수히 많은 곰팡이 중 하나일 것으로만 추측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미지의 숙주에서 우리에게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기온의 상승으로 인간의 체온에서 자랄 수 있는 변이를 촉진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항진균제의 남용으로 경쟁 생물의 성장을 억제해 항진균제 약물 내성을 지닌 칸디다 속 진균 같은 곰팡이들이 번성할 수 있는 틈새를 열었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항진균제는 4종류만 존재하며 그나마 새로 개발되고 있는 치료제도 없다는 점이다.

램스데일 교수는 “진균은 사실 동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균의 성장과 발달을 방해할 수 있는 약물은 인간에게 독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균류는 현재 전체 감염병 연구비의 1.5% 미만만 투자되고 있다. WHO 보고서는 환자들이 올바른 약물로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더 나은 진단 도구 뿐 아니라 감시와 항진균제 개발을 증가시킬 것을 촉구한다. 램스데일 교수는 “의대에서도 (진균 병원체에 대한) 강의는 한두 차례밖에 없다”고 말했다.

곰팡이의 위협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업용 작물에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의 종류만 약 6000여 종으로 추산된다. 매년 전 세계 쌀 수확량의 40%가 벼 도열병으로 손실되는데 이 병 역시 곰팡이 감염병이다. 곰팡이의 위협이 식량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직결되는 셈이다.

WHO의 보고서는 아직 인간으로 도약하지 않은 위협은 다루지 않고 있다. 보존생물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키트리드균(chytrid fungi)이라는 진균에 의해 양서류 500종이 감소하고 90종이 멸종한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상상한 시나리오가 양서류에서는 이미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곰팡이는 위협이 되는 만큼 기회도 제공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곰팡이에서 발견됐다. 이들 균사체가 어떤 화학적 비밀을 숨겨져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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